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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고작 이틀 일해… 살길 막막"
입력2009-03-11 16:54:52
수정
2009.03.11 16:54:52
서울 신정동 새벽인력시장 르포<br>일거리 줄어든데다 저임금 中 동포에 밀려<br>"한달에 15일만 일할 수 있었으면…" 한숨만
새벽 5시. 서울 양천구 신정동 인력시장에 들어섰다. 평소보다 윗옷을 하나 더 입고 길을 나섰지만 봄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쌀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나라에서 헤맬 시간이지만 이곳에는 벌써 10여명의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이 일감을 찾기 위해 나와 있었다.
양천구청에서 제공한 천막 안에 들어서자 다른 사람에 비해 한결 여유 있는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동렬(53)씨가 눈에 띈다. 알고 보니 그는 어제 일한 현장에서 하루 더 일하기로 돼 있었다.
그는 “오야지(반장)를 기다리고 있다”며 “오늘 할 일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올 들어서는 일거리가 진짜 없다”며 “한 달에 15일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한 월 200만원은 벌어야 하는데 이달 들어 일한 날이 이틀에 불과해 살기가 너무 버겁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아내, 두 딸이 함께 살고 있지만 대학교를 졸업한 큰딸(31)은 벌써 1년 가까이 쉬고 있고 둘째(27) 역시 직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 나오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대개 나이가 40대 이상의 장년층이다. 나이가 많으면 큰 건설회사에서 직영(회사가 정기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면서 고용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모이게 된다는 것. 일당은 14만원선. 지난해까지만 해도 250~300여명이 새벽에 나왔지만 올 들어 일감이 턱없이 줄면서 나오는 사람도 100여명으로 감소했다. 그나마 새벽에 일감을 구해 현장으로 가는 사람은 15명 내외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최(63)씨는 철근공으로만 50년을 살았다. 아들과 딸은 결혼해 분가했고 부인, 팔순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그에게 필요한 돈은 한 달에 150만원 정도. 그런데 올 들어 지난달까지 일한 날이 10일이 채 되지 않는다. 이달 들어서는 하루도 일거리를 잡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하루를 놀면 소주라도 한 잔 해야 하니까 돈이 더 든다”며 “일거리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조금 나오는 일거리마저 중국 교포들이 다 가져가버린다”고 중국 동포를 원망했다.
이원상(56)씨는 실업급여 얘기를 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최소 180일 동안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게 어렵다는 것이다.
“작고 영세한 회사는 우리가 일을 해도 고용보험에 돈을 내주지 않는다. 얼마 전에 실업급여를 타려고 알아봤더니 가입일이 100일이 채 되지 않았다. 100일은 그냥 없어진 것 같다.”
이들과 사는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6시가 가까워왔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막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일감을 찾은 사람은 이미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모두 오늘 쉰다”고 옆에 서 있던 한 사람이 귀띔했다.
이날 인력시장에는 이영희 노동부장관이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장관은 이들을 위로한 뒤 “일을 구하지 못하는 날에는 교육과 훈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추경예산을 확보하겠다”며 대책을 내놓았다. 이날 이 장관이 약속한 프로그램은 산업안전교육ㆍ도면보기교육ㆍ건설기능훈련 등으로 교육훈련에 참여하는 근로자에게는 하루 식대와 교통비로 1만5,000원씩이 지급된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한 일용직 근로자는 “이 나이에 무슨 교육훈련”이냐며 “실업급여 등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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