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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클릭] 훈장의 품격


'주렁주렁'. 모스크바나 평양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노병(老兵)의 상의가 늘어지다 못해 찢어질 만큼 훈장이 앞섶에 가득하다. 훈장 남발은 공산국가나 후진국, 정통성을 결여한 정권이 갖는 공통점이다. 다급한 경우도 그렇다. 만약 독일이 2차대전에서 승리했다면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터이다. 권위를 자랑하던 철십자훈장을 1ㆍ2차대전 동안 678만개쯤 뿌렸으니까. 히틀러도 훈장 두 개를 죽을 때까지 달고 다녔다.

△명예의 상징인 훈장처럼 사람을 돈 안들이고 부려먹는 수단도 없다. 훈장의 특성을 제대로 써먹은 대표적 인물은 나폴레옹. 평등사상에 위배된다는 국민공회의 반대를 딛고 레종 도뇌르 훈장을 제정(1802년)해 장병들의 사기를 드높이고 유럽을 뒤흔들었다. 레종 도뇌르는 오늘날도 권위 있는 훈장에 속한다. 211년 간 수훈자가 9만4,807명. 상대적 희소성 덕분이다. 미군 명예메달은 더욱 드물다. 남북전쟁 수훈자 1,522명을 포함해 152년 동안 3,468명만 받았을 뿐이다.

△영국 가터 훈장은 여인네의 다리에서 나왔다. 백년전쟁 직전 파티에서 함께 춤추던 귀부인의 가터벨트가 흘러내려 분위기가 야릇해지자 에드워드 3세가 발휘한 기지(機智)가 시발점. 가터를 집어든 국왕은 자신의 다리에 묶는 신사도로 파트너를 안정시키고 분위기를 돌렸다. 정식훈장으로 제정(1348년)된 뒤 665년 동안 가터훈장을 받은 사람은 1,005명에 불과하다. 메이지부터 아키히토까지 일본 국왕 4명이 내리 받은 점이 걸리지만 가장 권위 있는 훈장으로 평가받는 이유 역시 희소성에 있다.



△대한민국은 훈장 남발국가로 꼽힌다. 정부수립 이후 지난해까지 포상된 훈ㆍ포장이 100만개를 넘는다. 무공훈장이 여기에서 4분의1을 차지하니 훈장 남발에는 남과 북이 따로 없다. 퇴임하는 대통령 부부가 1억원 예산을 들여 셀프훈장을 수여하는 나라다. 넘치는 훈장에 한몫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탈된 훈장 9개를 뒤늦게 반납했단다. 참 골고루 한다. 관자(管子)가 일찍이 간파했던 나라를 떠받치는 네 기둥인 예의염치(禮義廉恥)는 다 어디로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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