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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5할의 승리
입력2007-12-27 17:50:39
수정
2007.12.27 17:50:39
역사를 말하면서 가정법(假定法)을 동원하는 것은 허망하다. 하지만 가정법을 써야 아쉬움이 줄어들거나 극적인 반전을 상상해볼 수 있을 때가 많다. 덧없는 줄 알면서 가정에 의존하는 것은 그래서다.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은 1573년 압도적인 전력의 우세를 바탕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벼랑 끝으로 내몰다가 돌연 병사했다. 죽음과 함께 ‘천하통일’의 꿈도 접어야 했다. 다케다가 갑자기 사망하지 않았다면 일본의 역사는 상당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도쿠가와는 물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조차 다케다에게 패한 후 치욕적인 죽음을 맞은 ‘그저 그런’ 영주로 기록됐을 가능성이 높다.
다케다는 일본 전국시대의 영주로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늘 ‘5할의 승리’를 강조했다. ‘가장 바람직한 승리’라는 이유에서다. 5할의 승리는 ‘신승(辛勝)’이다. 적이 무릎을 꿇었지만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은 승리다. 긴장과 겸허한 자세를 잃지 않게 한다. 그래서 다음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반면 7할, 나아가 10할의 승리는 금기의 대상이다. 7할의 승리는 ‘낙승(樂勝)’이다.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승리를 거둔 만큼 기강도 느슨해진다. 다음 전투를 제대로 준비하지도 않는다. 결과는 뻔하다.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은 채 후퇴하고 만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10할의 승리다. 이는 곧 ‘완승(完勝)’이다. 별다른 병력 손실도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둔 만큼 자신의 군대를 최고라고 여기게 된다. 완승은 교만을 낳는다. 다음 전투에서 적을 터무니없이 얕잡아보다가 10할의 패배를 당한다. 10할의 패배에는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여지도 없다.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이병박 대통령 당선자는 이번 대선에서 ‘5할의 승리’를 거뒀다. 이명박 당선자의 득표율은 48.7%였다. 당초 목표로 삼았던‘과반수 득표’에는 못 미쳤지만 다케다 신겐식(式)의 해석대로라면 ‘가장 바람직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5할의 승리’가 갖는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겸허한 자세가 느껴진다. 그는 당선 소감을 통해 “국민의 위대한 힘을 느꼈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다. 지난 2002년 당시 노무현 당선자의 득표율은 48.9%에 달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5할의 승리’였다. 노 대통령도 초기에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도 아우르려는 모습을 보였다.
현 정부는 2004년 총선을 계기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탄핵 바람에 힘입어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낙승(樂勝)’을 거둔 정도였는데 ‘완승(完勝)’을 거둔 것처럼 행동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백지 위임장’으로 받아들였다.
‘국민 참여 정부’를 떠들었지만 스페인의 악명 높은 종교재판소장 토르케마다(Torquemada)와 흡사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시 마녀 사냥에 착수했다. 혁신도시 건설, 9등급 수능 등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으레 ‘수구’, ‘반동’ 등과 같은 저주가 쏟아졌다. 농민이 보유한 농지도 도시계획안에 들어있다는 이유로 종합부동산세를 물리는 것에 대해 항의해도 ‘기득권층의 반발’로 치부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선거를 통해 이런 독선과 오만을 응징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26.1%의 지지율을 얻었다. 그러나 2004년 총선 결과와 비교하면 “국민들이 현 정부 여당을 관(棺)에 집어 넣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통합신당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당권을 둘러싸고 권력투쟁을 벌일 조짐이다. 이대로라면 국민들은 내년 4월 총선에서 이들을 관(棺)에 집어 넣은 후 대못질을 할 가능성이 크다. 민심은 참 무섭다. 현 정부 여당은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의 훌륭한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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