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변의 백이 여러 차례 웅크리면서 겨우 살았다. 그 과정은 너무도 굴욕적이었다. 그렇다면 대세는 흑이 휘어잡아야 마땅하다. 흑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야 한다. 그런데…. "기분은 계속 흑이 냈는데 바둑은 여전히 미세합니다. 흑이 아주 조금 앞섰을 뿐이에요. 덤을 내야 하니까 아직은 승부를 알 수 없습니다."(양재호) 흑53으로는 참고도1의 흑1로 바짝 다가가는 수도 생각할 수 있다. 검토진들은 이세돌의 기질상 이렇게 엄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그것이면 백은 2에서 4로 공격하게 되는데 이세돌은 이 코스가 실전보다 못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백54로 지킨 것은 이창호류. 55의 부근에 협공하고도 싶지만 흑이 눈목자로 2선에 슬라이딩하는 것이 백으로서는 너무도 괴롭다. 백56은 마지막 남은 큰 곳. 이 수가 놓이자 상대적으로 우상귀의 흑진이 취약해 보인다. "원래부터 우상귀에는 패맛이 남아 있었어요. 이젠 그 맛이 훨씬 유력해진 겁니다."(김주호) 백62는 그 패를 결행하기에 앞서서 자기 말을 돌본 수순이다. 참고도2의 흑1로 하나 받아주면 백2로 바로 돌입할 작정이다. 흑3이면 백4 이하 14로 패가 난다. 수순 가운데 흑7로 A에 젖혀 이으면 백이 7의 자리에 젖혀서 역시 패가 난다. 흑으로서는 상당히 응수하기가 거북한 장면을 만난 셈인데…. "어, 이게 뭐지?"(김성룡) 검토실의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괴이한 수 흑63이 27분의 장고 끝에 놓였다. "묘수인가?"(김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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