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로 손실을 볼 경우 투자자에게 100% 책임이 있다는 말은 이제 옛 판례에서나 찾아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96년 대법원은 금융상품 투자 후 손실이 났을 경우 이를 판매한 금융사와 투자한 고객중 어느 쪽에 책임이 있는 지 여부를 놓고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증권사의 '수익보장약정' 행위에 대해 "증권회사의 강행규정에 위반된 '이익보장행위'로 투자를 권유했고, 이는 고객에게 증권거래의 위험성에 관한 인식형성을 방해해 고객보호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기존의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깬 최초 판결이었다. 이 판결이후 1997년 IMF와 2007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등 예상치 못한 위험변수 등을 계기로 금융상품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100%'에게서 잘못된 투자를 권유ㆍ방치한 금융회사로 무게중심이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특히 지난 해 2월 발효된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에 고객보호의무와 설명의무를 명문화해 놓았기 때문에 투자손해 책임소송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1일 서울행정법원의 장상균 부장판사는 "15년전 대법원이 증권투자손실을 증권사의 부당한 투자약정행위에 의한 것이라는 첫 판결이 있은 후, 점차 금융사의 책임범위가 증가해 왔다"며 "자통법 시행 이후 고객들의 유사소송은 더 증가할 것"이라 전망했다. 장 부장판사는 최근 금융투자협회가 주최한 '투자권유제도 선진화' 세미나에서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투자권유자 책임소송의 전망' 발표에서도 이같이 밝힌 바 있다. 실제 중소기업과 은행이 첨예하고 맞서고 있는 키코(환헤지파생상품) 사건이나 펀드투자 손실 등에 따른 투자손실 책임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투자손실 책임을 둘러싼 소송이 과거보다 급속히 늘고 있다"며 "투자자들의 권리의식 확산과 함께 자통법상 금융사의 고객보호 의무범위를 확대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투자손실 분쟁과 관련, 법원은 '수익약정행위'에 국한됐던 판단을 증권사 직원의 단정적 표현에 의한 투자권유행위는 물론 최근 금융위기로 촉발된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금융상품 불완전판매에도 고객의 손을 잇따라 들어주고 있다. 나아가 은행권의 장외파생상품에 대해서도 설명의무 위반, 고객보호의무 위반 등으로 금융사 등의 책임범위가 최고 60%까지 높아진 상태다. 장 부장판사는 "기존 금융상품 소송이 고객과 금융사간의 '신의성실의 원칙(민법2조)'에 기반한 판단이라면, 자통법에는 '투자자이익 우선의무'라는 새로운 기준을 추가된 점도 분쟁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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