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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금 넣는 쪽에 우선권"… 첩보전 방불

■ 기자가 직접 체험한 전세시장

갈수록 심해지는 전세대란… 매물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

분초 다투며 송금 겨우 계약… 전셋값, 매매가의 91% 달해

메르스 탓 집 구경도 힘들어


"내일 다른 집도 좀 둘러보려고 하는데 그것만 보고 결정하면 안 될까요?"(기자)

"집주인이 이미 3~4군 데서 보고 갔다고 먼저 200만원 선수금을 넣는 쪽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하네요. 일단 지금 당장 돈 넣고 결과를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공인중개사)

지난 10일 오후10시. 기자는 전화를 끊자마자 컴퓨터를 켜 인터넷뱅킹으로 집주인에게 돈을 송금했다. 그때까지 집주인 얼굴은 보지도 못했지만 융자가 없고 저당이 잡혀 있지 않다는 간단한 사실만 확인하고 돈을 보냈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빨리 돈을 보낸 덕에 사흘 뒤인 지난주 말 집주인을 만나 계약금을 치를 수 있었다. 전셋값도 결코 싸지 않았다. 전세 계약을 맺기 약 일주일 전 집주인이 바뀌었는데 기자가 계약한 전셋값은 매매가의 약 91%에 달했다.

다소 성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서둘러 전세 계약을 맺은 이유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세 대란에서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없었다. 최근 전세 시장의 추이를 보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도 가질 수 없었다.

실제 선수금을 넣기 두 시간 전인 지난 10일 오후8시.

기자는 일을 마치고 전셋집을 보러 갔다. 애초에 전용면적 49㎡와 59㎡ 두 곳을 보기로 약속하고 찾아갔으나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보니 59㎡는 그날 오후 이미 나가고 없었다. 하나 남은 49㎡도 경쟁이 치열했다.



집을 보러 들어가는 아파트 입구에서 기자보다 한발 앞서 집을 보고 나오는 또 다른 신혼부부를 만났다. 또 집을 보고 나가기도 전에 집을 보러 들어오는 다른 신혼부부와 마주치는 민망한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조금 과장하면 서울에서 전세를 구하는 일은 한마디로 분초를 다투는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지방과 수도권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앞서 이미 5월 중순부터 3~4군 데 지역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중소형 전세 매물이 나오면 전화를 달라고 부탁했지만 먼저 전화가 걸려온 적은 거의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시간이 날 때마다 부동산 정보 사이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지만 전세 매물은 나오는 족족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이도 없었다. 가뜩이나 전세 매물도 없는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때문에 매물을 내놓은 집도 집을 보여주기를 꺼리는 바람에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집을 충분히 살펴보고 우리가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를 것이라는 애초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나마 중개업소 사장의 말이 위로가 됐다. D공인 K 사장은 "(기자에게) 전셋집을 계약했으니 행운"이라며 "현장에서 보니 기준금리 추가 인하 등으로 가면 갈수록 전세난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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