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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공약과 주택 전월세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강화 방침의 후퇴. 얼핏 보면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실버세대로 불리는 노년층 표심 잡기와 눈치보기다. 실버파워의 원동력은 노년층의 규모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빠른 증가세. 65세 이상 고령 인구만 해도 2000년 339만명(7.2%)에서 지난해 614만명(12.2%)으로 늘어났다. 2030년에는 1,269만명(24.3%)으로 지금의 2배를 웃돈다. 모두 유권자다. 그러니 큰 선거를 앞둔 시점일수록 노년층의 입김과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코앞에 두고 수싸움에 몰리자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무리수를 둔 덕분에 노년층의 표심과 대권을 잡았지만 거품이 잔뜩 낀 공약은 이후 내내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야당의 비협조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더 깎는 데 대한 가입자들의 반발로 7월 시행조차 불투명한 실정이다.
정부는 최근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발표 일주일 만에 부랴부랴 보완책을 내놓았다. 자존심을 구겨가며 대책을 내놓은 진짜 이유가 뭘까. 전월세·주택매매 시장에 미칠 혼선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분석은 핵심을 한참 비껴갔다. 본질은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온 노년층의 기득권 보호다. 소득·재산 하위 70% 노인을 겨냥한 기초연금과 반대로 상위 30% 노인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다. 6·4지방선거에서 이들의 이탈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여권의 우려와 조바심의 반영이다.
정부는 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을 고쳐 연간 임대소득이 2,000만원 이하면 임대소득이 없는 것으로 봐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시켜주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때문에 쓰라린 패배를 맛본 민주당 의원들은 아예 이런 내용을 건강보험법에 못 박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수혜자는 3주택 소유자까지 확대하는 대신 60세 이상 노인으로 연령층을 제한했다.
정치권과 정부의 경쟁적인 노년층 구애는 세금·건보료 부과의 원칙과 형평성을 갉아먹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은퇴한 생계형 임대소득자'에 대한 세금·건보료 폭탄론은 과장된 것이다. 필요경비를 60%까지 인정해주는 바람에 10억원의 전세보증금을 받는 2주택자가 새로 부담할 세금은 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이 없으면 연간 12만원, 다른 소득이 2,000만원 이상이면 19만원 안팎에 그친다. 이들은 은퇴했더라도 재산과 임대소득이 웬만큼 있고 공무원·사학·군인·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중 하나를 타는 사람이 적잖다. 60세 이상 피부양자 448만명 가운데 5%(22만여명)가 연간 1,0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다. 임대소득이 2,000만원이라면 연간 소득이 3,000만원 이상인데도 웬만한 세금과 건보료 등 사회적 부담은 모두 피해간다. 반면 2012년 연 소득 2,000만원 이하인 294만명은 1인당 평균 17만8,000원의 세금을 냈다.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내는 피부양자 기준도 연간 이자·배당소득 4,000만원 이하, 근로·기타소득 4,000만원 이하, 공무원·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4,000만원 이하, 사업소득 500만원 이하(비사업자)로 너무 느슨하다.
이 노인에게 직장가입자 자녀가 없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재산·소득·자동차 등을 건보료에 반영하는 지역 건보에 가입해 월 20만원 이상의 건보료를 내야 한다. 직장·지역가입자 간 부과체계가 다르고 직장가입자에게만 피부양자를 허용해 민원과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현행 건보제도 탓이다. 전월세가 급등했던 지난해 상반기 셋방살이를 하는 지역가입자 12만여세대의 건보료는 10% 올랐다. 전월세 임차료도 재산으로 봐 보험료를 매기는 까닭에 이들은 전월세와 건보료 인상 부담을 한꺼번에 떠안아야 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모든 소득에 세금과 건보료 등 사회적 부담을 지우는 게 맞다. 근로·금융·연금소득 등 소득의 성격에 따라 세금과 건보료를 부과하는 소득의 반영률을 20~100%로 차등화하면 폭탄 우려도 피할 수 있다. 재산·자동차 등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제도는 하루빨리 뜯어고쳐야 한다. 특정 소득에 대해 2,000만~4,000만원까지는 세금이나 건보료를 면제하는 불합리한 틀에서 벗어나야 공평한 사회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임웅재 논설위원 jael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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