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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특히 고전 경제 이론에서는 인간을 '합리적 사고에 근거해 최적의 선택을 내리는' 존재로 규정했었다. 이른바 합리적인 경제활동의 주체로 가정했던 것. 그런데 심리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허물고 '행동경제학'이란 것을 창시한 대니얼 카너먼은 이같은 프레임을 깨뜨렸다. 직관적 사고의 결함과 오류에 대해 연구해 온 카너먼에 따르면 인간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의 대부분은 무의식적이거나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직관적 사고'이다. 반면 합리적·이성적 인간이 할 법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단계적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정돈된 사고는 극히 적었다. 카너먼은 결국 우리 생각의 숨겨진 주인공은 '직관적 사고'이며, 이 직관적 사고의 방식을 인지과학적 실험을 통해 설명해 주면서 직관적 사고로 판단하고 의사결정할 경우 필연적으로 따르는 오류와 결함들을 보여줬다. 이 연구로 그는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작동하며 우리의 생각을 좌우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우리 생각의 세부적인 면들, 이를테면 심리와 판단, 문제해결과 선택, 예측 등은 어떤 식으로 이뤄질까? 이 책은 이같은 폭넓은 질문에 대해 상세하게 답한다. 22명의 필진은 행동경제학부터 사회심리학,언어학,인지과학,진화심리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석학들로 구성돼 '생각'에 관한 자신들의 연구와 쟁점을 풀어놓았다.
직관적 사고의 허점과 맹점을 짚어준 카너먼과 달리 인지과학계의 거장이자 베를린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인간개발연구소 소장인 게르트 기거렌처는 직관적 사고의 기능과 유용성을 설명한다. 기거렌처는 사람들이 제한된 시간·정보를 갖고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어림짐작'의 생각 방식을 '어림셈법(heuristics)'이라 명명하고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신속하면서도 간결하게, 그리고 비교적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추동력"임을 강조한다. 그는 길 가는 사람을 무작위로 택해 주식목록을 보여주고 인지도 순으로 고르게 한 다음, 선택된 주식들 중 상위 10%를 구매해 6개월간 지켜봤다. 결과는 의외였다. 행인들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고른 주식이 "저평가된 우량주식, 지수변동에 의거한 주식이나 블루칩 펀드, 무작위로 선택한 주식보다 수익이 높았고 이런 결과는 상승장이나 하락장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결과가 나온 것. 기거렌처는 오류와 왜곡으로 인식되기 쉬운 직관적 사고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도록 유도한다.
'블랙스완'의 저자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는 통계자료가 갖는 정보 왜곡을 지적한다. 그는 사람들이 "확실성의 환상에 사로잡힌 까닭에 통계자료라는 불확실한 모델에 의지해서 확실성을 끄집어 내려 하고 있으며 이런 태도가 오히려 새로운 위기를 불러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대니얼 길버트가 연구한 '정서 예측'도 흥미롭다. 정서 예측이란 어떤 사건에 의해 우리가 경험하게 될 다양한 정서적 반응에 대해 예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파경, 지지하는 후보자의 낙선 등에 대한 슬픔과 괴로움, 패배감 등의 정서예측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영향이 적었고 쉽게 회복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오류는 정서를 실제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예측하게 하는 '영향력 편향' 때문에 일어났다.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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