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상파 다채널서비스(MMS)를 놓고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 방송사 사이에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말 EBS가 올해부터 지상파 MMS의 시범 서비스를 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지상파 MMS는 디지털 영상 압축기술을 활용해 한 개의 지상파 채널을 제공하던 기존 주파수대역(6㎒)을 분할해 기존 방송사가 여러 채널을 내보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지상파 입장을 대변하는 방송협회는 "영국·미국·독일 등 주요국이 디지털 전환과 함께 다채널서비스를 하고 있다"며 전면 허용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케이블 방송 등 유료방송업계에서는 "지상파 독과점이 심화되고 결국 상업 채널로 변질돼 방송프로그램공급자(PP)들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등 유료방송 생태계 존립을 위협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양측의 의견을 들어봤다.
● 찬성-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시장 경쟁 막으면 시청자만 피해 입어
다양한 무료 콘텐츠·선택권 확대 기회로
소비자들에게 가장 나쁜 시장은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 시장이다. 이미 우리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이를 경험하고 있다. 세 개의 통신사가 적당한 비중으로 나눠 가지고 있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경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선택권이란 세 회사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차원에 불과하다.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이익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하나의, 혹은 몇 개의 사업자들이 이윤을 안정적으로 획득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동통신 시장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미디어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 방송 시장도 그렇다. 90%가 넘는 가구가 비용을 지불하고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돈을 내지 않고 방송을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무료 지상파 방송과 유료 방송 사이에 경쟁은 없다. 이미 우리는 돈을 내고 방송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무료로 더 좋은 방송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나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문제는 우리가 무료로 더욱 많은 채널을 통해 방송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 존재함에도 이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12월31일 시끌벅적했던 디지털 전환이 완료됐다. 자, 과연 우리 시청자들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는 디지털 전환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었나. 아무것도, 단언컨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15년에 걸쳐 이뤄진 디지털 전환 작업은 시청자들에게 어떠한 가시적인 편익도 제공하지 못한 채 마감됐고 우리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감도 오지 않는다. 영국의 사례를 보자. 영국은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면서 전체 방송 시장에서 무료 지상파 방송과 유료 방송의 경쟁이 이뤄지도록 했다. 그 결과로 시청자들의 선택권은 확대됐고 40% 수준의 가구가 무료 지상파 서비스를 시청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지상파 다채널서비스를 허용하면 된다. 현재의 KBS1·2, EBS, MBC, SBS 다섯 개 채널이 두 배 이상의 채널로 늘어나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정부는 지상파 방송에 대한 다채널서비스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다수의 유료 방송 사업자들의 강한 반발도 일어나고 있다. 힘 있는 거대 기업이 시장을 독식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정부의 정책 의지를 무력화시켰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그러했고, 특정 사업자가 시장의 3분의1을 넘어 나날이 점유율을 높여가는 방송 시장에서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노력이 또 다른 기업에 의해 난항을 겪고 있다. 사업자들의 입장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안들이지만 이 이슈들은 시청자와 소비자의 편익과 복지와 매우 밀접한 사안이다. 사업자들의 반발이 방송에 대한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공공 서비스는 한없이 위축되는 상황과 유료 서비스들의 홍수에서 시청자들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다채널서비스를 통해 방송을 볼 수 있다. 정부가 이를 허용하기만 하면 된다. 무료 방송과 유료 방송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자. 선택은 시청자가 할 것이다.
● 반대-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장
MMS 확대땐 지상파 광고 쏠림 가속
유료 방송 타격… 생태계 무너질 것
2015년 새해가 출발했지만 방송 시장은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은 이를 탈피하기 위해 광고총량제 도입, 700㎒ 주파수 배정 요구, 유료 방송 재송신료 협상, 지상파 다채널서비스(MMS) 등 수익 추구에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전체 방송 시장이 침체돼 있음에도 가장 큰 덩치인 지상파 방송의 수익 확대를 위한 몸부림에 곳곳에서 심각한 마찰음이 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지상파 관련 규제 완화 및 개선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광고총량제 허용에 이어 무료 보편적 시청권 확대를 위해 이달 말부터 EBS의 MMS 시범방송을 허용하고 KBS 허용 여부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다른 지상파도 MMS를 시행할 수 있도록 전면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EBS MMS는 상업광고 편성이 금지돼 광고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전체 지상파에 MMS를 허용하면 일정 수준의 질을 담보하는 콘텐츠 제작을 위해 광고 규제 완화를 요구할 것이다. 또한 MMS는 공공자산인 주파수 활용에 관한 문제이므로 공공 이익의 극대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논의할 필요가 있으며, 지상파 채널 증설에 관한 논의이므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지상파 MMS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지상파 다채널방송의 효용성이 낮다. MMS가 발달한 유럽은 공영방송 중심의 방송 정책을 펼쳐왔다. 유료 방송 점유율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지상파 다채널방송을 통한 시청권 확대가 자연스럽게 진행된 측면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료 방송 점유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이미 대다수 국민이 다채널방송을 수용하고 있다. 지상파 다채널방송에 대한 니즈를 고려했을 때 공적 자원 및 방송 제작비 투입의 효용가치는 매우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지상파 채널이 증가하면 방송산업의 불균형만 커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상파는 막강한 프로그램을 활용해 광고 시장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유료 방송이 가입자 수는 충분하지만 저가 출혈경쟁으로 정상적인 성장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지상파가 채널을 늘려 방송광고 유치 등 상업적으로 활용하게 된다면 매체 균형에는 더 균열이 가고 유료 방송 플랫폼 및 콘텐츠 시장까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셋째, MMS 허용 범위와 운영주체 문제다. 영국은 공영방송 BBC를 비롯해 방송채널사업자를 추가로 선정해 다채널방송을 하고 있고 태국은 MMS 채널 경매를 통해 수익금으로 전 국민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기도 한다. MMS의 의미에 비춰볼 때 공영방송에 대한 다채널 허용은 충분히 검토할 만하지만 민영방송에 대한 채널 증설 허용은 명분이 매우 약해 보인다. 상업채널 범위까지 전면 확대해야 한다면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다양한 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지상파의 어려움 타개를 위해 타 매체에 영향을 주는 규제 완화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직접 수신율 제고와 같은 근원적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하며 주파수는 국민의 재산을 빌려 쓰는 것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오직 국민을 중심에 둔 공익 확대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