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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건설사인 H사의 A부장은 용인의 아파트 공사현장이 준공된 후 한달 보름 가까이 본사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2년여 동안 정신 없이 현장소장으로 뛰다가 오랜만에 본사에서 여유롭게 근무하지만 A부장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교육을 받고 싶어 받는 게 아니라 마땅히 갈 다음 현장이 없기 때문이다. 건설업체 현장 직원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한 현장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다른 현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주택경기 위축으로 업체들의 신규사업이 줄어들면서 이 같은 인력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A부장은 "주택시장 침체로 웬만한 사업은 모두 보류되다 보니 개별 현장이 마무리될 때마다 본사로 복귀하는 현장 직원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당장 신규 수주가 이뤄진다 해도 적체된 인력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기에는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중견 건설업체들은 이 같은 인력순환 문제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신규사업은 고사하고 상당수 업체들이 매입했던 사업부지를 되파는 등 아예 당분간 사업을 접는 추세다 보니 갈 곳 잃은 현장 직원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중견업체인 B사 관계자는 "올 봄부터 본사에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출퇴근하고 있다"며 "월급만 축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러다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직이나 업무변경조차 쉽지 않다. 현장관리의 경우 본사 관리직이나 영업직과 달리 대부분 현장에서만 많게는 20년 가까이 지내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설업계의 경우 시장이 위축되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이 현장 직원들"이라며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풍부한 현장관리 노하우를 가진 인력들이 대거 구조조정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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