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돌변이다. 충분한 설명도 없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었기에 하는 말이다.
오바마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8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에 공동대응하기로 합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수소화불화탄소(HFC)로 알려진 온실가스 배출과 소비를 줄이자는데 뜻을 모았다. 이후 양국은 연이어 온실가스 규제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기존 및 신규발전소의 탄소배출량을 규제할 수 있는 기준마련을 환경청(EPA)에 지시했다.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키스톤 XL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도 온실가스 추가배출이 없어야 승인하겠다고 말했다. 중국 역시 선전에서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달 들어서도 기후변화 이슈를 둘러싼 미.중 공조가 가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이달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공장, 화력발전소, 중ㆍ대형 차량 등부터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나가자는데 합의했다. 미국은 중국 뿐 아니라 인도에 대해서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정한 교토의정서에서 2001년 탈퇴한 이후 기후변화 이슈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2013년 이후의 국제적인 온실가스 규제체제인 포스트 교토체제에도 중국과 함께 반대했다. 자국산업 보호가 이유였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유럽 중심의 온실가스 규제체제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들어있다. 즉 유럽이 ‘지구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기후변화 이슈를 들고 나오고 있지만 실은 이를 통해 그동안 미국에 빼앗겼던 글로벌 정치ㆍ경제 헤게모니를 되찾아 오려 한다는 속셈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단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설정을 통한 온실가스 규제체제였기 때문에 미국은 유럽이 설정한 온실가스 규제에 반대했다.
중국 역시 그동안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을 들어 강력한 온실가스 규제에 반대했다. 즉 이미 발전과정을 다 끝낸 선진국들이 지금 와서 온실가스를 규제하자고 하면 한창 발전과정에 있는 중국과 같은 개도국은 어떻게 하느냐며 선진국 중심의 온실가스 규제와 대폭적인 개도국 지원을 요구했다.
이랬던 미국과 중국이 갑자기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자세로 돌변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은 유럽의 몰락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위기가 지속되면서 유럽의 온실가스 규제체제 역시 사실상 무너졌다. 2013년이후의 온실가스 규제체제인 포스트 교토체제 실패는 이를 뚜렸이 반증한다. 유럽국가들이 가장 합리적인 온실가스 규제수단이라고 자랑하던 유럽의 배출권거래제는 배출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가 침체하면 자연스레 온실가스 배출도 줄고, 그러면 배출권 가격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통한 글로벌 헤게모니의 탈환 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미국이 이 이슈를 들고 나와도 유럽에 이용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유럽이 무너져 있는 사이 미국이 이 이슈를 주도하면서 구체적인 대응체제까지 내 놓는다면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글로벌 헤게모니의 유지,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중국 역시 과도한 규제수준만 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공조를 통한 글로벌 온실가스 규제는 G2시대를 열어갈 수단이 될 수 있다. 즉 G2 시대를 넘어 ‘팍스 차이나’시대를 도모하고 있는 중국으로서 전 지구적 이슈인 기후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글로벌 헤게모니의 확대,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동안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부작용을 이제는 생각해야 하는 국내적인 상황도 중국이 과거보다는 온실가스 규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갖도록 하는 내부요인이다.
앞으로의 기후변화 논의를 주도하려 하는 유엔이 그리고 있는 온실가스 규제체제 역시 이 같은 돌변을 설명해 주는 변수다. 유럽의 온실가스 규제체제는 국가적인 감축목표를 정한 뒤 각 산업, 기업별로 내려가는 탑-다운의 강력한 규제체제이다. 반면 유엔은 이 같은 강력한 규제로는 많은 나라들로부터 동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각국의 자발적인 감축노력에 중점을 두는 바텀-업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수준의 규제라면 미국도, 중국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자국의 경제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응해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불리는 미국의 에너지 패권 역시 미국의 돌변을 설명하는 변수중 하나다. 그동안 발전부분에 있어 기후변화 대응은 주로 석탄발전을 원자력발전으로 대체하는 식이었다. 태양광, 풍력, 수력, 지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많이 강조되지만 아직은 주력 에너지원이 될 수 없다. 한참 멀었다. 따라서 주로 원전이 온실가스 감축수단으로 많이 강조돼 왔다. 그 와중에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터지며 반 원전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원전이 아니라면 대안은 가스발전이다. 석탄, 석유, 가스 등 전통 에너지원 중 온실가스 발생이 가장 적은 것이 가스발전이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천연가스가 넘쳐나는 미국으로서 가스발전 확대는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산업적으로는 기후변화를 매개로 한 각종 표준의 선점을 이번 돌변의 이유로 볼 수 있다. 유럽이 주도하던 온실가스 규제가 무너진 틈을 타 기후변화 관련 각종 규제의 틀을 재구축함으로써 미국이 글로벌 산업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각종 상품과 인프라의 에너지표준 강화, 구체적인 기후변화 대응기법의 개발과 적용 등이 수단이 될 수 있다.
임기 후반기를 맞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 임기내에 무엇인가 역사적인 업적을 남기려는 개인적인 동기 또한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때문이냐 아니냐는 논란은 여전히 있지만 현실 세계는 힘있는 나라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유럽 중심의 온실가스 규제가 실패한 원인도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큰 까닭이 있지만 미.중의 견제도 크게 작용했다.
따라서 이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미.중 양국이 온실가스 규제체제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우리는 찬.반을 떠나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양국의 움직임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쓴이 안의식은 현재 서울경제신문 디지털미디어부장으로 근무중이다. 경제부장, 정보산업부장, 논설위원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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