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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민정책 질적 전환 고민해야 할 때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는 인류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다. 고도의 정신문화를 담은 서양철학의 요람이기도 하다. 아테네가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개방사회'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아테네는 지중해 전역의 인재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아테네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재능과 학문을 뽐낼 수 있었으며 사회는 이들의 재능을 환영하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흔히들 고대 철학자는 모두 아테네 출신인 줄로 여기지만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본토박이는 사실상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정도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플라톤을 낳은 사상의 원류는 아테네가 아니라 저 멀리 소아시아 밀레토스 출신인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아낙시메네스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출신이며 소크라테스 이전의 파르메니데스(엘레아 출신), 제논(키프로스), 아낙사고라스(소아시아), 프로타고라스(트라키아) 등이 외국에서 태어난 뒤 아테네로 건너가 학문적 포부를 펼친 자들이다.

현대 문명에서 이런 개방사회의 이점을 최대한 향유하는 국가로 미국을 꼽을 수 있다. 미국 역시 꾸준히 해외 고급인력을 받아들이면서 과학과 산업발전을 꾀해온 '현대판 아테네'라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를 떠받치고 있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2012년 발표한 보고서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통한 스탠퍼드대의 경제적 영향력'에 따르면 이 대학교 졸업생들이 세운 기업들의 매출 총액이 매년 2조7,000억달러(약 3,000조원)로 조사됐다. 이들이 창출한 일자리는 무려 540만개에 이른다. 놀라운 것은 유학생들이다. 2000년대 이후 스탠퍼드대 출신이 세운 벤처기업의 42%가 미국 국적이 아닌 외국 국적이었다. 스탠퍼드대학원생의 28%, 그리고 박사후과정의 38%가 외국 출신이다.

미국이나 고대 아테네는 모두 개방사회를 특징으로 한다. 개방사회는 이처럼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이 미국을 넘지 못할 이유는 바로 개방사회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이민자나 그 자녀가 창업한 회사는 2010년 경제잡지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40%를 차지했다."

우리 사회도 외국 고급두뇌들이 저마다 이 땅을 밟고 싶어하고 또한 이 땅에서 자신의 재능을 한껏 발휘하고 싶어하게 한다면 개방사회는 자연히 실현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인구절벽 현상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을 해법으로 곧잘 거론되는 것이 외국인재 유입책 아닌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9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해외 우수인재를 받아들이는 이민정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외국인재 영입을 강조한 바 있다.



한국의 출산율은 최근 들어 1.18명에 그쳐 초(超)저출산 국가로 분류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중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인구절벽' 현상은 이미 현실이 됐다. 외국인 인적 자본을 적극 활용한 생산성 향상이 절박한 이유다.

물론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외국인 출입국 정책이 국제적 기준에 비춰봐도 충분히 개방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수한 전문인력 유치 방안도 마련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이민정책에는 장기적 인력구조 변화나 고용상황,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종합적 고려가 없는 것이 치명적 결함이다. 인재유치보다 저임금 단순 노동자 유입에 그치고 있는 현실도 이런 배경에서다.

서울경제신문 기획 시리즈 '이민정책 새 틀 짜라'에 따르면 현 외국인 체류자 180만명 가운데 연구자·기술자나 의사 등 전문인력은 지난해 상반기 4만9,542명이며 나머지는 비숙련 저임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다. 체류 중인 전문인력은 1년 전보다 오히려 1,000여명 줄어들었다. 국가 경제의 파이를 키우고 세수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창조적 전문인력이 복지비용을 유발할 여지가 큰 저임금 체류자보다 턱없이 적은 셈이다. 이대로 가면 이민자들로 인한 경제 활성화 효과보다 사회적 비용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칫 현 서유럽 국가들이 앓고 있는 사회통합 문제가 재연될 수도 있다. 이민정책의 성패는 곧 국가의 미래를 가른다. 이민정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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