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이고 때로는 도발적인 현대미술이 종종 난해하다고 여겨지지만, 잘 그린 그림 한 점이 주는 감동은 여전히 진하고 특별하다.
극사실주의 1세대 화가로 꼽히는 지석철(59) 홍익대 회화과 교수의 별명은 ‘의자 화가’다. 1982년 파리비엔날레에 초청돼 작은 나무 의자들로 구성된 설치작품을 출품한 후 30년 이상 그가 그린 그림에는 항상 작은 의자가 등장한다.
주워온 깨진 하트모양의 돌덩이 옆에도, 유학생이 선물한 앤틱 카메라 곁에도, 해적이 살았던 프랑스 해변에도, 기둥 위에도 나무 뿌리 옆에도, 자고 일어난 침대보 위에도 손가락 만한 꼬마의자가 나뒹군다.
이 의자를 두고 “인간 존재를 은유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부재(不在)가 역설하는 존재에 대한 기억부터 이별, 고독, 희망, 애착, 연민 등 나의 ‘의자’는 ‘의자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어도 좋을’존재”라고 설명했다. 스쳐가는 일상이 문득 신선하고 생경하게 다가올 때 작가는 이를 ‘비일상적 상상’의 장면으로 연출한 다음 화폭으로 옮긴다. 언뜻 외로워 보이지만 ‘없음’에서 ‘있음’을 떠올리는 철학적 휴머니즘을 담은 그림이다.
관훈동 노화랑에서 25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 10호부터 150호 크기의 ‘부재(Nonexistence)’ 시리즈 21점이 전시된다. 가을에 잘 어울리며 ‘잘 그린 손맛’이 탁월한 작품들이다. (02)732-3558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