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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양주에 위치한 한 개인 커피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기원과 전파경로를 따라 커피와 관련된 국내 주요 유적과 장소를 탐험할 대원들을 선발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뉴스는 아니었지만 한국 커피 시장을 이끌어가는 관계자들의 열정과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의 크기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대 초 외국계 브랜드들의 진출로 시작된 국내 커피전문점 시장은 이제 지나가는 유행이나 트렌드가 아닌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을 만큼 그 규모와 발전적인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더 이상 커피전문점 문화를 단순히 해외에서 들여온 것이라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은 우리 나름의 전략과 콘셉트가 또 다른 줄기로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한국의 커피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 한때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됐던 커피에 얽힌 고종황제의 이야기나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커피믹스 재료 중 하나인 커피 크리머 등은 한국에도 우리만의 커피 성장 스토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커피전문점 열풍은 여기에 공간이라는 아이템이 더해진 것일 뿐, 과거 한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서양의 문화가 아닌 것이다.
우리만의 커피문화 산업으로 뿌리내려
지난 8월 초 회사가 운영하는 커피 브랜드의 글로벌 1,000호점 축하 행사를 준비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현지 파트너들이 축하인사와 함께 고마움을 전해왔다. 이와 함께 최근 브랜딩 관리 및 서비스 품질 등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 신흥국들의 러브콜이 많아지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 우리나라와 같이 커피전문점이란 공간이 확대되지 않은 중국, 동남아 국가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국내 커피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기대 이상이다. 여기서 새롭게 발견되는 사실은 커피의 주 재료인 원두를 생산하는 동남아의 필리핀ㆍ인도네시아 같은 국가도 아직 커피전문점 시장이 크게 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원두에서 커피로, 커피에서 카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각각의 단계가 별개의 시장과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잔은 어디서 어떤 제품을 즐기느냐에 따라 다양한 원산지를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케냐의 한 농장에서 수확한 생두를 미국의 A라는 회사가 로스팅을 거쳐 원두로 가공하고 한국의 B라는 커피전문점에서 판매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소비자는 직접 생두를 구입할 수도 있고 A회사의 로스팅된 원두를 구입할 수도 있으며 A회사의 원두를 사용해 커피 한잔을 판매하는 B사의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 전세계 소비자가 아침 출근길에 즐기는 커피 한잔을 따져보면 결론적으로 어떤 브랜드와 이미지, 콘셉트를 입히느냐에 따라 작은 커피나무의 열매 하나가 제 3의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세계화전략도 한국적 가치 넣어야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유통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 70억의 인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젠가 마시고 마주치게 되는 커피에 대한 의미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커피를 둘러싼 제 3의, 제 4의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자 기회라는 이야기다. 1961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연 배우 오드리 헵번이 로마 스페인 광장에서 먹었던 젤라토 때문에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 관광객들이 로마 스페인 광장에서 젤라토를 사먹으며 사진을 찍는다. 스페인 광장에서 젤라토를 먹는 것은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와 현상이 된지 오래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그 이면의 가치를 눈여겨보는 시대는 이미 도래했으며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작은 소비활동 하나에도 더 큰 부가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 소비인지를 면밀히 살펴본다. 커피는 이러한 소비 트렌드를 대변하는 제품 중 하나로, 혹자들은 커피 한잔을 통해 소비자들이 문화적, 사회적인 가치를 동시에 소비한다고도 말한다. 대부분의 산업이 그러하겠지만 커피 브랜드 또한 잘 만든 기업 가치와 브랜드 하나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산업이며 이는 국가성장의 다양한 측면에 기여한다. 커피 산업에서 '세계를 로스팅하라'는 말은 전세계를 무대로 커피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시도와 산업적 도전을 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충분한 실험과 증명의 과정을 거쳐 견고한 가치를 세웠다면 이제는 더 넓은 시장을 상대로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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