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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Life] 정현욱 정동극장장

"품격 있지만 문턱 높지않은 극장 만들어 현대와 함께 숨쉬는 전통예술 선보일 것"



취임이후 국내 관객과 소통 강화… '외국인 관광코스' 인식 불식시켜

전통창작 발견 프로젝트 마련 등 공연예술가 발굴에도 적극 나서

6월 '배비장전' 中 공연성공 발판… 내년에도 동남아 무대 진출 예정


서울 중구 정동의 덕수궁 돌담길 주변은 사시사철 색다른 운치를 내뿜으며 여유와 감성을 자극한다. 답답한 도심 뒤편에 길게 뻗은 길은 현대식 빌딩과 고궁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고즈넉함이 매력적인, 현대와 과거가 마주하는 공간이다. 돌담길 끝자락, 붉은 벽돌에 둘러싸인 '정동극장'은 이 매력적인 공간 속에서도 옛것과 새것의 접점을 추구하며 지난 1995년 설립 이후 20년 가까이 전통공연을 펼쳐오고 있다. 호화로운 장식 없이 소박한 아낙처럼 자리를 지켜온 극장. 너무도 수수해 많은 이들이 그냥 지나쳤던 정동극장이 소통을 시작했다. 길을 지나는 직장인들에게 "여기서 함께 즐기자"며 말을 건네고 해외에 나가 "한국의 전통예술이 이런 것이오"라고 손짓하기 시작한 것. 저고리 속에 얼굴을 감춘 여인처럼 조용했던 정동극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정현욱(사진) 정동극장장을 정동 집무실에서 만났다.

◇'잊힌 장소' 정동, 관객과의 접점을 모색하다="정동극장 하면 기억에서 잊힌 극장이라는 생각이 컸죠." 1년 반 전 정동극장 사장으로 처음 출근하던 날의 감상을 묻자 '아주'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과거 극단에서 일하며 정동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는 정 극장장은 "많이 바뀐 극장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정동극장이 몇 년 전부터 관광객들을 겨냥한 공연 쪽으로 집중했어요. 그러다 보니 과거 여러 작품을 활발하게 올리던 공연장의 모습이 사라진 것 같더군요. 어느 순간부터 진짜 정동은 사라진 느낌이랄까요."

취임식도 없이 극장을 알아가는 데 시간을 쏟아부었다. "무슨 일이든 기존 체계를 무시하고 새것을 시작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정 극장장의 업무 철학이다. 얼마간 극장과 극장 사람들을 마주하며 그가 세운 방향은 소박하지만 정확했다. "가장 시급한 건 '대국민 접점'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어요." 정동극장이 국내를 여행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전통공연을 펼치는 데 주력하면서 오히려 국내 관객들에게는 공연장보다는 외국인 관광코스로 인식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정동이라는 곳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입니다. 이렇게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전통공연을 국내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흥미를 자아내는 서비스가 없었다는 게 안타깝더군요." 국내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정동극장은 다양한 문화공연 및 체험행사로 구성된 '돌담길 프로젝트'를 올해 처음 기획했다. 이달 14일 시작해 오는 31일까지 2주간 진행되는 돌담길 프로젝트는 '전통과 현대의 소통'에 방점을 찍고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공연을 진행할 계획이다.

◇전통은 현대와 함께 숨 쉬는 것…젊은 창작자 지원 힘써=전통이라는 것은 박물관에 박제된 상태가 아닌 시대와 같이 걸어가는 개념이라는 것이 정 극장장의 생각. 그는 현대와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예술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그가 새로운 시각에서 전통예술을 가꾸는 창작자를 지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동극장은 올해 7월 '전통창작 발견 프로젝트-100만원의 씨앗'을 시작했다. 공모를 통해 전통을 소재로 한 공연예술가를 발굴, 100만원의 지원금과 쇼케이스 기회를 주기로 한 것. 7~8월 공모를 통해 선정된 5개 팀은 이번 돌담길 프로젝트에서 쇼케이스를 연다. 정 극장장은 "정동극장의 미션이 전통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전통은 시대와 함께 걸어가는 존재가 돼야 한다"며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하는 젊은 창작자 중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해 기회를 주고 무대를 함께 꾸미는 것이 진정 전통을 발전시키고 현대의 대중과 함께 숨 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극장과 대중의 소통은 극장 내부의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 극장장은 취임 후 극장 직원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하며 책을 통해 조직과 개인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있다. "사람도 나이 들면 거동이 불편해지듯 조직도 나이가 들면 동맥경화처럼 막히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죠. 이런 부분을 말끔하게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에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패기 넘치던 연극쟁이=위계질서 없이 소통을 강조하는 스타일은 극단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기도 하다. 돈이 잘 안 도는 배고픈 연극시장에서 의리와 소통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각종 예술제를 통해 연기하며 연극에 맛을 붙였던 정 극장장은 대학 졸업 후 기획 스태프로 일하다 극단 사다리와 인연을 맺었다. "사다리가 어린이 공연을 하는 극단이었어요. 대부분의 어린이 연극이 외국 명작동화를 가져다 한국말로 바꿔 올리던 시절에 창작극을 만들며 굉장히 앞서 간 곳이었죠. 우연히 '말이 왜 파랗지(1990년)'라는 연극을 봤는데 별거 없는 세트였지만 무대에서 일어나는 장면이나 분위기가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극단을 찾아갔죠." 당시 유홍영 사다리 사장에게 찾아온 20대의 패기 넘치는 젊은이는 본인 소개와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함께 일하면서 앞으로 3년간은 내가 하는 일은 간섭하지 마십시오." 당돌한 청년의 열정과 자신감을 알아본 유 대표는 정 극장장을 채용했다.

◇연극 통해 배우 의리·소통=연극쟁이의 고단한 삶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급여 문제든 창작의 고뇌든 괴로움은 많았지만 유일한 비타민은 동료, 바로 단원들이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은 1997년 예상치 못한 위기의 순간 큰 힘을 발휘했다. "호주 공연단체와 함께 '징검다리'라는 공연을 예술의전당에 올리기로 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 당시 3주 공연 제작비로 7,000만원 정도를 쏟아부었는데 당시로서는 아동극은 물론 성인극도 이 정도 투자하는 작품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공연을 올리기 일주일 전에 IMF가 터졌어요. 길거리에 차도 없을 때 공연을 하게 된 거죠." 결국 제작비의 반도 회수하지 못했다. 그런데 단원 중 누구 하나도 불평을 늘어놓거나 지연된 급여를 독촉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기다려줬다. "다들 힘든 상황인데도 힘을 보태줬어요. 그 덕에 여기저기 뛰어다닐 힘이 생겼고 시간이 걸렸지만 돈 문제는 모두 해결할 수 있었어요." 1994년 단원으로 출발한 정 극장장은 2001년 사다리의 대표 자리를 이어받아 지난해 정동극장장에 선임되기 전까지 12년간 극단을 이끌었다.

◇해외로 향하는 정동의 향기 "서두르지 않을 것"=정 극장장은 이제 막 꿈틀대는 정동의 향기를 한국을 넘어 해외로 퍼뜨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만 관객으로 겨냥했다면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한다는 것. 정동극장은 이미 올 6월 '배비장전'이 중국 푸저우와 상하이에서 성공리에 공연을 펼쳤다. 다만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전제를 깔았다. "저변 확대보다 더 중요한 건 해외시장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게 하느냐입니다. 무조건 많이 보여주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한국 문화의 근원적인 정신을 어떻게 가공해 외국인들에게 각인시키느냐. 이 지점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겠죠." 그런 면에서 중국 투어는 '가능성을 확인한 기회'였다는 게 그의 평가다. 정동극장은 내년에도 중국과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3~4개국에서 전통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본인조차도 한때 '잊힌 장소'로 기억했다는 극장. 극장장 정현욱은 정동극장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랄까. "사람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어요. 시내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건 행운입니다. 길을 걷다가도 음악 소리가 들리면 언제든 들어와 즐길 수 있는, 품격은 있지만 문턱이 너무 높지 않은 그런 극장이 되기 바랍니다."





He is…

△1967년 경남 함양

△1994년 극단 사다리 입단

△2001~2013년 극단 사다리 대표

△2003~2005년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이사



△2007~2012년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

△2007~2013년 ㈜원더스페이스 공동대표

△2008~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추진위원,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집행위원

△2009~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2013년 서경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2013~정동극장 극장장







정동극장의 새로운 도전 '돌담길 프로젝트'는

고전·청춘·낭만 주제 야외 공연… 김창완밴드 등 아티스트 106명 참여
31일까지 3주간 행사
손편지 쓰기 이벤트도


지난 14일 개막한 정동극장의 '돌담길 프로젝트'는 이달 31일까지 3주간 '고전·청춘·낭만'을 주제로 한 무료 야외공연 시리즈다. 부제는 '전통의 현대적 정체성 찾기'로 동시대와 소통하는 전통예술을 모색해나가기 위한 정동극장의 새로운 도전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국악 기반의 록 밴드 '잠비나이'와 한국 대중음악의 거장 '김창완밴드'의 컬래버레이션 무대가 펼쳐진다. 잠비나이는 세계 최대 음악축제인 2014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한국인 최초로 초청을 받아 화제가 된 그룹이다. 이 밖에 세계 민속악기를 다루는 퓨전 밴드 '두번째달'의 연주, 생활밀착형 판소리 밴드 '날아라에코맨'과 창작 판소리꾼 권송희의 합동 무대, 거문고·가야금·해금·아쟁·피리·대금·장구·기타 등 여덟 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퓨전 전통 뮤지션 '불세출'의 연주, 국악기 연주자로서 최초로 홍대 인디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가야금 연주자 겸 포크 싱어송라이터 정민아의 음악 등 색다른 무대를 만날 수 있다. 정동극장의 창작 발견·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선정된 Free FM, 동화, 정지혜, 너이(Nu-E), 이봉근·두번째달 등 총 5개 팀의 쇼케이스도 선보인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는 총 106명에 달한다.

정동길의 가을을 추억하는 손편지 쓰기 이벤트인 '정동극장 느린 우체통' 행사도 열린다. 우체통에 들어간 편지는 내년 돌담길 프로젝트 때 기재된 주소로 배달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토요일 오후 2시와 6시50분, 평일 점심시간인 오후12시20분, 퇴근시간인 오후6시20분·50분에 펼쳐져 주말 나들이객은 물론 평일 직장인들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정현욱 극장장은 "정동극장 야외마당을 '예술이 숨 쉬는 정원'으로 가꿔 가겠다"며 "정동길을 찾는 많은 시민이 아름다운 길에서 우리 음악과 아티스트를 만나 삶의 쉼표를 가질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돌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정동극장 역시 관객들에게 일상의 작은 휴식공간으로 발견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공연일정은 정동극장 홈페이지(www.jeongdong.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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