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을 하던 시기가 있다. 이를 흔히'대항해 시대'라 일컫는다. 대항해 시대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유럽 사회 전반에 연쇄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15세기만 해도 아시아에 뒤쳐진 유럽은'대항해 시대'를 변곡점으로 19세기 세계 패권을 휘어잡을 수 있었다.
프랑스 근현대사를 전공해 현재 일본 가쿠슈인대학 학장으로 재직중인 저자는 근대 유럽이 19세기 세계 패권을 쥐게 된 그 배경에 대해 심도 있는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키워드는'대항해 시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시작한 모험 항해는 무역의 중심지를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시켰고, 유럽 각국은 아시아 교역 시장에 앞다퉈 뛰어 들었다. 아시아에서 흘러 들어온 막대한 부(富)는 유럽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기도 했다. 부가 재편되면서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고 기존 신분 질서도 무너지게 됐다. 중세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황제나 종교의 권위는 약해졌다. 유럽 각국에서 계몽사상이 태동했으며, 프랑스 혁명 등 시민 혁명이 유럽 각지로 번져나가면서 권력의 중심이 왕에서 국민으로 이동했다. 신학(神學)적인 사고는 과학적인 사고로 대체됐고, 이는 산업화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과학기술은 전기와 자동차를 발명하는 등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통신의 발달은 전 세계를 하나의 망으로 연결했다. 저자는'대항해 시대'에 촉발된 국민 국가의 성립, 산업 발전 등 일련의 일들이 근대 유럽의 패권을 지탱한 축이 됐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유럽의 전성기를 가져다 준'대항해 시대'는 전 세계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낳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프리카·유럽·아메리카를 잇는 삼각 무역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 것은 노예무역이었다. 이로 인해 아메리카에는 피부색과 연관된 불합리한 계층 질서가 형성됐다. 유럽 문명화에 이바지하며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한 기술의 발전은 역으로 유럽의 오만을 불러일으키는 매개가 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뒤쳐진 비유럽 국가들에게 널리 문명을 퍼뜨려야 한다는 오만으로 유럽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고, 이 과정에서 사회진화론, 우생학 등 위험한 사상이 탄생하게 됐다. 이 같은 자만심은 곧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는 위험한 씨앗이 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이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종차별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미완의 문제로 남아있고, 산업 문명이 낳은 자원 고갈의 위기 등 절박한 환경 문제를 떠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근대 유럽이 낳은'빛과 그림자'가 오늘날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16∼19세기 400여 년의 근대 유럽사를 읽고, 전체를 유기적으로 조망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1만 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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