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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뒤 대학원에 진학할 때만 해도 김미진(35·제천시청)은 다시 총을 잡을 일은 없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강습 아르바이트로 다시 만난 사격과 '두 번째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25일 경기 화성 경기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사격 여자 더블트랩 개인전. 김미진은 110점을 기록, 108점을 쏜 중국의 장야페이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10점은 세계신기록. 여자 더블트랩 종목은 국제사격연맹(ISSF)이 경기 규칙을 개정한 지난해 이후 ISSF 주최대회에서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ISSF 대회에서 더블트랩 종목의 기록을 공인받으려면 5개국 이상, 15명 이상의 선수가 나와야 하는데 규정이 바뀐 지 2년이 다 돼가도록 인원이 충족되지 못해서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는 6개국에서 19명이 출전, 규정이 바뀌고서 처음으로 여자 더블트랩 종목의 기록이 인정되면서 김미진의 기록이 자동으로 세계신기록이 됐다. 김미진의 금메달은 한국 사격 대표팀의 이번 대회 일곱 번째 금메달이다. 김미진은 이보나(한화갤러리아), 손혜경(제천시청)과 함께 나간 단체전에서도 314점으로 중국(315점)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김미진의 주종목은 더블트랩이 아니었다. 한국체대 재학 시절까지 소총 선수였으나 이렇다 할 성적이 나오지 않자 총을 놓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태릉클레이사격장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클레이 사격을 가르쳐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격에 대한 열정을 되찾았다. 남편인 손상원 KB국민은행 감독도 더블트랩을 통해 사격장으로 복귀하기를 적극 권했다. 2003년 김미진과 결혼한 손 감독은 테스트라도 받아보자며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팔을 걷어붙였다. 이후 복귀를 결심한 김미진은 충북 증평의 친정에 살면서 소속팀 제천시청에서 훈련에 매진했다. 서울에 머무는 손 감독과는 주말부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 등 주위의 도움과 다시 찾은 열정으로 김미진은 클레이 전향 1년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소총 선수 시절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던 그로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거머쥐면서 '제2의 사격인생'에서 비로소 만개한 셈이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더블트랩 단체전 금메달에 힘을 보태고 2010 광저우 대회에서도 역시 단체전 은메달을 도왔던 김미진은 이번 대회에서 마침내 개인전 시상대에서도 맨 위에 서고 말았다.
한편 사격 2관왕 김준홍(24·KB국민은행)은 이날 남자 25m 스탠더드 권총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은메달 2개를 더했고 박봉덕(41·동해시청)은 50m 소총 복사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1986년부터 29년째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박봉덕은 이번이 아시안게임 등 메이저대회 개인전 역대 첫 메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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