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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英 위기관리시스템 본받자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지적했듯이 현대사회는 문명의 발달이 역설적으로 대형 재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위험사회이다. 통제와 예방에 대한 과신은 잠재적 위험을 증가시킨다. 더구나 악의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저지르는 ‘非正常 事故(abnormal accident)’도 세계 곳곳에서 빈발하고 있다. 올해 7월에 있었던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나 지난 2003년 2월에 터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가 비정상사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고들은 예방이 어렵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와 같은 새로운 얼굴의 위험과 함께 우리 사회에는 압축적 성장과정에서 내재된 한국적 위험, 즉 안전을 경시하고 건설한 시설물들에 의한 위험이 병존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 위험이 국민의 생명이나 재산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위기관리시스템의 선진화를 탐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다. 이런 맥락에서 매우 파괴적인 지하철 폭탄 테러를 맞아 정부ㆍ시민 및 언론 등이 현장 대응과 사후 수습,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모범적인 위기관리능력을 보여 준 영국의 선진적 위기관리시스템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영국 위기관리시스템의 첫째 특징은 현장대응 측면에서 지역 중심의 분권화를 통해 사고대응의 신속성과 현장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런던의 경우 지방정부ㆍ군ㆍ언론ㆍ기업ㆍ시민단체 등 민관을 아우르는 위기대응 기관들이 참여하는 위기극복포럼(RRF)이 지역적 특성에 관한 심층적 정보교환을 통해 계획의 현실성을 높이는 전략적 위기관리계획을 수립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이 계획을 바탕으로 정밀한 실천과 유관 기관 사이의 조정까지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전략적 조정그룹(SCG)이다. 이것은 지역 내의 정부기관과 군ㆍ경찰ㆍ소방대ㆍ병원 등으로 구성된다. 아울러 사고현장에 설치된 ‘합동위기통제본부(JESCC)’는 경찰ㆍ소방서ㆍ응급의료기관 등이 원활하게 협조하게 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중앙정부의 위기관리조직인 중앙위기대책위원회(COBRA)는 국가적 수준의 재난을 제외하고는 지역간 협력문제를 조정하고 지방정부를 지원하는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결국 중앙에서 COBRA, 지역에서는 SCG, 현장에서는 JESCC가 유관 기관간 빈틈없는 공조체제를 구축해 위기에 대해 체계적이고 전방위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사후수습에 있어서 영국의 위기관리시스템은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바탕으로 사고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전문적인 서비스를 장기간에 걸쳐 제공, 공적제도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고 있다. 셋째, 공동체 유지라는 사회적 규범을 존중하는 영국 언론사들은 미디어위기관리포럼(MEF)을 운영하고 있고 여기에 언론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정부의 미디어 전략이 더해져서 언론이 위기관리의 협조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상에 살펴본 영국의 위기관리시스템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이해관계자들이 보여주는 공적제도에 대한 신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의 몇몇 위기관리 실패 경험은 국민들로 하여금 제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나아가 공공 부문에 대한 신뢰형성을 저해하는 기능을 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위기관리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 획득이 선행돼야 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제정되고 소방방재청이 출범하는 등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있으나 향후 수년간 실제로 얼마나 성공적으로 위기관리를 하느냐의 여부가 공적 신뢰의 회복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공적인 위기관리를 수행할 것인가. 가장 구체적인 방안은 위기관리 체제 및 제도를 정교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전제하에 위기관리시스템을 설계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위기관리체제를 지방 중심으로 분권화함으로써 신속하고 강력한 현장 장악력이 발휘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세밀한 위기관리실행계획을 바탕으로 현장정리피해자 및 유가족 관리 등 사후수습에 관한 내용을 법제화하고 사후수습을 중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민관 합동의 위기관리단위를 설립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 개선점 발굴의 차원에서 위험 대비-현장대응-사후수습 등 일련의 위기대응 프로세스의 운영을 평가하고 이렇게 해서 확보한 위기관리지식들이 체계적 축적절차를 통해서 위기관리시스템 업그레이드에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위기대응과정에서 대중과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위기극복을 위한 중요한 열쇠라는 점을 인식하고 언론이 위기관리의 협조자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미디어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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