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교가 회계학을 교양필수과목으로 지정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미술이나 연극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도 졸업하려면 반드시 회계학개론을 수강해야 한다. 철학이나 인문학개론 정도는 돼야 교양필수과목으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선입관 때문인지 신학기만 되면 이 학교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회계학이 인문학과는 달리 지성인에게 필요한 학문이 아니고 재산관리에 관한 기술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물론 회계의 발명은 상인의 필요 때문이었다. 회계는 상인이 사업 규모 대비 얼마의 돈을 쌓아야 하는지 물적 시설과 재산 가치가 어떻게 평가돼야 투자자ㆍ채권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지에 관한 원칙과 기준을 도출하기 위해 정교화됐다. 즉 객관적인 재무정보를 만드는 과정이 학문화된 것이다.
개인이 쓰는 가계부는 수(數)로 쓰는 일기다. 가계부만 제대로 써도 지출과 수입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데 국가도 마찬가지로 수입ㆍ지출 기록을 통해 객관적인 반성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특히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운영되니 당연히 수입ㆍ지출에 관한 정보는 정확해야 한다.
이처럼 회계학이 상인과 투자자 그리고 채권자 사이의 불신과 대립의 골을 메우기 위해서 태어났지만 자본주의국가가 기틀이 잡힌 다음에는 개인의 건전한 소비생활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풍요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까지도 키워주는 학문이 됐다. 게다가 국민의 납세의무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확정되는지 정해주는 실생활에 아주 밀접한 학문도 회계학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근면ㆍ검소한 생활 자세와 각종 재산의 평가방법 그리고 나라의 살림살이를 감시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이 교양필수로 자격미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회계학을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소피스트 철학이 실존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베토벤을 답습한 슈만은 낭만파인데 그 제자 브람스는 왜 신고전파로 분류하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다 안다고 해서 완벽한 교양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고상한 교양은 스스로 익혀 배우면 될 것이고 현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고상의 등급이 떨어지더라도 교양으로 회계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회계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의 회계학을 위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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