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품업계에 엔저 역풍이 몰아치고 있다. 엔화가치가 1달러당 120엔 수준의 약세를 이어가면서 수출 대기업들이 사상 최고 실적 행진을 보이는 것과 달리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업체들은 원재료·물류비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소비자들의 지갑이 좀처럼 열리지 않으면서 매출부진으로 이중고를 겪는 상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식품가공 업체인 가고메와 기코만이 1일 25년 만에 토마토케첩 가격을 인상하는 등 일본의 대형 식품사들이 4월부터 가공식품 출하가격을 줄줄이 올린다. 가고메의 경우 총 97개 품목의 가격을 4~13% 인상한다. 엔저와 신흥국 수요증가로 원재료인 토마토페이스트 가격이 지난 2년 동안 46% 오르자 더 이상 비용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메이지와 모리나가유업 등 유가공 업체들도 1일부터 희망 소매판매가격을 2~8% 올린다. 주류업체인 산토리스피릿은 위스키 가격을 4월부터 평균 20%, 네슬레일본은 스틱형 믹스커피 전 품목의 출하가격을 17~21% 인상하기로 했다. 식용유 제조사들은 1월 가격 인상 방침을 밝힌 지 3개월 만인 4월부터 2차 가격 인상에 나선다. 여기에 대형 제분사인 닛세이제분은 오는 6월19일부터 업소용 밀가루 가격을 25㎏당 45~125엔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혀 앞으로 제과 및 외식업계의 가격 인상 도미도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가격 인상이 식품업계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소비세율 인상 이후 일본 소비자들의 저가제품 선호가 뚜렷해지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식품업계의 출하가격 인상 요구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커피 업계는 지난해 11월 최대 25%의 가격 인상을 예고했지만 실제 소비자판매가격은 7.3% 오른 데 그쳤다. 올 1월5일부터 파스타 출하가격을 5~8% 올리기로 했던 닛신푸즈도 실제 소비자판매가격 인상폭은 4%를 간신히 넘겼다. 니혼게이자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가공식품 출하가격 인상 발표가 줄을 이었지만 주력품목 100종 가운데 3분의2는 소매판매가격이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제조 및 판매현장에서는 최대한 비용을 삭감하고 내용물을 줄이는 등 소매판매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가계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특히 4월부터는 식품 가격뿐 아니라 일부 세 부담이 늘고 서비스 요금도 인상돼 가계에 압박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산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4월부터 경자동차에 부과되는 세금이 오르고 대형 테마파크인 도쿄디즈니랜드 1일 자유이용권도 500엔 인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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