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자국 항공업계에 유럽연합(EU)에서 부과하는 탄소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행동지침'을 내렸다. 중국ㆍ인도 등에 이어 미국까지 등을 돌림으로써 EU 탄소세 부과에 대한 각국의 반발과 제재 움직임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은 현재 미 항공업체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르는 EU 탄소세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법안을 무기명 투표로 가결했다. 이미 지난해 비슷한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된 바 있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절차만 거치면 앞으로 미국 항공기는 EU의 규정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EU는 올해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역내에 이착륙하는 모든 항공기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 상한선을 설정하고 이를 초과하면 탄소배출권을 사야 한다는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규정을 어기고 탄소배출권을 구매하지 않는 업체에는 벌금이 부과된다.
법안을 발의한 존 튠 사우스다코타 공화당 의원은 법안 통과 후 "미국이 EU의 탄소세 규정에 응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준 것"이라며 "미 항공업계와 탑승자는 유럽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시행된 이 제도에 한푼도 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상당수 국가들이 EU의 탄소세 규정에 강력히 반발하는 가운데 미국까지 EU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각국의 반발과 제재는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각국은 EU 탄소세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탄소배출권 구매와 과징금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탄소배출권 12월 선물가격은 탄소세 부과 초기 톤당 10.5유로에 육박했지만 현재는 수요감소로 7.8유로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지난 3월 120억달러 규모의 유럽산 비행기인 에어버스 구매를 보류하는 무역보복조치까지 내놓았다. 6월에는 중국이 탄소세를 내지 않는다며 EU에서 부과한 과징금 납부도 거부했다.
인도도 3월 에어버스 구매보류를 검토한다고 밝혔으며 5월에는 EU가 이를 계속 강행하면 유럽 항공기가 인도 상공을 지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도 최근 EU행 비행기 노선을 줄이고 있으며, 심지어 유럽의 7개 항공사들도 불황기에 탄소세 부담까지 겹쳐 수입이 줄어든다며 부과시기를 늦춰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미 상원의 이번 결정에는 국내 정치일정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야를 막론하고 오는 11월6일 대통령선거와 같은 날 치러지는 상원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애국주의를 앞세워 글로벌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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