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소비자들의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만들어진 소비자집단분쟁조정제도의 이용자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분쟁조정 능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 때문에 제도 시행 5년여 만에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단체ㆍ지자체 등이 신청한 집단분쟁조정신청사건은 10건에 그쳤고 분쟁조정에 참여한 소비자 수도 1,087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도를 처음 시행한 2008년(신청사건 31건, 참여 소비자 1만2,200여명)에 비해 사건 수는 68%가 줄었고 이용자 수는 무려 91%나 감소한 것이다.
소비자들이 제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빠르게 줄고 있는 이유는 결국 조정 절차를 통한 소비자 만족도가 높기 않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정은 기업과 소비자 양측 모두가 조정안에 동의해야 성립이 되는데 기업의 경우 불리한 조정결과에 대해서는 불복하곤 해 조정이 결렬되는 경우가 잦았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특히 피해가 광범위하고 기업 측의 잘못이 뚜렷해 보여 많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던 사안일 수록 조정이 성립되지 않고는 했는데 이런 것들이 결국 제도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떨어뜨렸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표적이 경우가 중국인 해커에 의해 수천만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던 옥션과 소비자간의 분쟁이었다. 2008년 9월 개시된 옥션과 소비자간의 집단분쟁조정에는 5,000여명 이상의 소비자가 참여해 피해 정도에 따라 옥션 측이 소비자에 5만원 혹은 10만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하라는 결정을 받았지만 옥션 측이 거부해 결국 조정이 불발됐다.
지난 2010년 대형병원들의 강제적인 선택진료비 징수가 부당했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집단분쟁 조정 사건도 결국 병원 측이 조정을 거부해 결렬됐다.
집단분쟁조정제도가 분쟁조정 능력을 잃은 데는 사법부 판결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금처럼 소비자피해와 관련된 소송에서 기업 측에 유리한 판결이 계속 나오는 한 기업들이 조정절차에 적극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일례로 2009년 소비자들은 석면 탈크가 들어있는 베이비파우더를 만든 제조업체와의 조정이 결렬되자 민사소송을 진행했는데 결국 "파우더 사용자의 질병이 의학적ㆍ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기에 제조사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의 패소 판결을 받아야 했다. 옥션 개인정보 유출 소송 역시 소비자들이 줄줄이 패소했다.
오흥욱 소비자분쟁조정위 팀장은 "조정절차는 소비자들에 신속한 구제를 약속하는 대신 기업들에게도 피해를 줄여주는 소위 '윈윈'할 수 있는 제도"라며 "하지만 기업들에게 '소송에 가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생각이 존재하는 한 조정절차에 성실히 응하려는 태도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집단분쟁조정제도는 다수의 소비자에게 같거나 비슷한 유형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일괄적으로 분쟁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지난 2007년 3월부터 시행됐다. 법적 소송과 달리 소비자의 입증책임이나 비용 부담이 없고 절차 진행이 빠르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기업과 소비자 양측 모두가 조정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강제로 조정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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