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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X파일’ 보도 사건 놓고 격론
입력2010-12-16 18:44:31
수정
2010.12.16 18:44:31
“공익 위한 언론자유” vs “공익 목적이라도 수단 정당성 없어”
불법 도청한 내용을 공익을 위해 언론이 보도하는 것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대법원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1997년 대선 당시 재벌과 언론사가 검찰에게 이른바 ‘떡값’을 돌리는 계획을 논의하는 내용을 당시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가 불법 도청한 내용을 보도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이상호 MBC 기자와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현 대통령실 정무1비서관)의 상고심 공개변론이 2007년 상고된 지 4년 만에 16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렸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불법 도ㆍ감청에 의해 얻어진 통신이나 대화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하면 10년 이하의 징역형 등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는 공익 목적을 위해 언론이 이를 보도한 경우 언론의 자유 등을 이유로 정당성이 인정돼 위법성이 조각되는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기자 측의 한상혁 변호사는 "X파일의 내용이 대통령 선거자금 제공과 관련된 내용이어서 심각한 공익의 침해를 막기 위해 공개한다는 정당한 목적이 있었고, 관련자들의 사생활침해로 인한 피해 정도가 공익보다 우월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떤 기자들도 그와 같은 자료를 입수했을 때 보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 사건이 유죄라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법과 사회적 실질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올 것”이라 꼬집었다.
아울러 김 전 편집장 측 변호인인 김태수 변호사는 "미국 연방대법원은 베트남전 발발 원인과 관련한 도난 당한 1급 기밀문서를 뉴욕타임즈가 보도하는 것은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결했고, 독일 등도 유사한 판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피의자 측 참고인으로 나온 조국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언론중재법이 ‘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진실하거나 진실하다고 믿는 데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보도 내용과 관련해 민사상 책임지지 않는다’고 한 취지를 이번과 같은 형사사건에서도 고려해야 한다"며 "해당 보도는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없고,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정병두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은 "목적이 공익성을 가지면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것은 전근대적 법 감정"이라며 "알 권리를 위해 다른 국민을 고문할 수 없듯 불법도청으로 얻어진 내용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청자체가 불법임에도 불법적으로 취득된 도청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면 이는 모순이다”며 “언론의 자유가 언론사의 자유로 해석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 참고인으로 나온 박용상 변호사는 "도청 내용이 폭로된 상황을 전제로 공익 목적이 인정되는지를 따져서는 안 된다"며 "기본적으로 도청으로 얻어진 자료는 폐기돼야 할 것이므로 안의 내용물을 모르는 상황에서 이 내용을 알 권리가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모두발언 이후 조 교수에게 언론사가 모든 불법도청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정당한 지 물었다. 이에 조 교수는 “해당 언론사가 불법도청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료를 적법하게 넘겨받아 공익적인 목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어 이 대법원장 박 변호사를 상대로 어떤 경우에도 불법도청 자료를 공개해서는 안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박 변호사는 “전쟁이나 테러, 범죄 등 위급한 상황에서 얻은 자료에 한해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한편, 원심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법상 정보의 불법수집과 공개누설 행위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의 언론의 자유 등을 감안해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바 있다. 1심 법원은 공익적인 부분만 보도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 기자에게는 무죄를 선고한 반면, 공익상 필요 없는 부분까지 도청의 모든 부분을 다 보도한 김 편집장에 대해서는 선고유예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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