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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짧았던 16년… 네가 있어 행복했다 아들아"

[세월호 참사] ■ 자식 잃은채 맞은 어버이날

"다시 내 아기로 내 품에…" 애절한 父情 시에 분향소 숙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치사랑'을 확인하며 흐뭇해하는 어버이날. 자식을 잃은 안산 단원고 희생자 209명의 부모는 이날도 죄인이었다.

한 희생자 부모는 '내 자식 억울함 풀어줄 때까지는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아직도 진도 바다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마지막 한 명까지 찾아주세요'라는 피켓을 들었다. 또 다른 희생자 어머니는 "희생자 가족입니다. 서명 좀 부탁 드립니다"라고 외치며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았다.

8일 안산 세월호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출구 한편에서 창백한 얼굴로 조문객을 향해 외치는 고 임모양 어머니의 옷섶에서는 카네이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옆에 서 있는 다른 어머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이름과 반, 부모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희생자 가족 명찰만이 목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수원·안양·광주 등 전국 각지의 주소가 담겨 있는 서명을 받을 때마다 어머니들은 자꾸 고개를 조아렸다.

카네이션 없는 어버이날, 오늘도 부모는 먼저 간 자식에게 국화꽃 한 송이를 건넸다. 국화꽃이 어울리지 않는 아이들의 해맑은 사진에는 크림색·핑크색 장미가 장식돼 있었다. 고 성모(17)군의 아버지도 다시 아들을 찾았다. 며칠 전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러 진도 팽목항에 다녀온 뒤였다. 그는 영정사진 앞에 올린 편지에서 "우리 아들 어디 가면 항상 아빠한테 결재 받고는 했는데 왜 이번에는 4일 안에 돌아올 거라고 해놓고는 멀리 가서 약속도 안 지키는 거야"라며 "앞으로는 외박금지"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이내 외박금지를 풀어주는 대신 조건을 붙였다. "잠깐이라도 아빠 꿈속에서 웃는 모습 한 번이라도 보여주면 생각해볼게. 예쁜 덧니 보여주면서 환하게 웃어줘." 아버지는 아들이 크면 술 한잔 하면서나 건네려 아껴둔 말도 편지에 담았다. "사랑해 아들."

고 박모(17)양의 어머니는 항상 엄마 손길을 필요로 하던 딸이 걱정돼 박양과 친했던 친구들의 영정 아래 당부의 말을 담은 메모지에 남겼다. "봉석아 연약한 00이 하늘에서도 잘 챙겨줘" "태민아 00이 밥 좀 챙겨주겠니, 참고로 00이 한식 좋아한다."



이날 대답 없는 자식 앞에선 미안함도 고마움도 모두 부모의 몫이었다. 한 희생자의 어머니는 야구를 좋아한 아들에게 야구공을 선물하며 "아들아 16년 5개월 너무 짧지만 아들 덕분에 참 많이 행복했다. 고마워 미안하고 사랑해"라고 적었다.

한 아버지는 아이를 보내며 애끓었던 마음으로 시를 지었다. "영겁의 시간 지나/ 네가 다시 내 아이로/ 내 품에 안기길"로 시작하는 시는 "아가야 춥고 무서울 때면 엄마 젖 냄새를 기억해/ 어느 환한 봄날 다시 내 아가로 내 품에 안기렴"이라며 어버이의 절절한 부정을 표현해 분향소를 다녀간 어머니·아버지들을 울렸다.

휑한 부모의 마음을 또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인 자원봉사자와 조문객들이 채웠다. 서울에 사는 조모씨는 "아이들이 카네이션 드리고 싶을 텐데 못하니까 대신 왔다"며 아이들을 대신해 분향소에 카네이션을 놓고 갔다. 한 조문객은 나이키 핑크색 티셔츠가 든 쇼핑백과 편지를 두고 갔다. 편지에는 "어머니가 좋은 옷 못 입히셔서 널 못 만날까봐 걱정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며 "꼭 엄마 손잡고 얘기해드려 이제 괜찮으니까 울지 마시라고…"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 3주 동안 유가족들을 챙겨온 한 자원봉사자는 "카네이션이라도 달아드리고 싶지만 (유가족들은) 오늘이 어버이날인지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다"며 "우리 집 중학생 두 아이에게도 오늘은 카네이션 대신 서로 감사하면서 지나가자고 선물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이날 안산에서 단원고 학생들 12명의 발인이 진행됐다. 그들은 어버이날에 부모와의 짧은 재회를 끝내고 가족의 품을 영원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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