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자가들 사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이미지가 경제를 살릴 '개혁가'에서 동북아 정세를 위협하는 '트러블메이커'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본 내에서는 아베가 지지하는 도쿄도지사 후보가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등 1년여째 아베 총리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말뿐인 개혁에 염증을 느끼는 분위기가 역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은 최근의 일본 증시 급락이 신흥국발 불안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분석되지만 실상은 '아베노믹스'에 실망한 해외투자가들이 결국 매도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일 수 있다고 10일 지적했다. 주가가 크게 하락한 이달 초에는 세계적인 큰손 투자자 조지 소로스가 일본 주식 매도에 나섰다는 루머가 돌면서 시장 불안을 부추기기도 했다.
전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아베노믹스의 성장전략이 지난 1년간 성과 없이 답보상태에 머물면서 글로벌 헤지펀드 등 해외 투자세력들 사이에서 아베 총리를 개혁가로 간주하는 시각은 사라져가고 있다. 대신 중국을 자극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우는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투자가들의 경계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날 사설에서 아베발(發) 내셔널리즘에 대한 우려를 제기해 이 같은 지적을 뒷받침했다. FT는 아베 총리가 이웃 나라인 중국에 위협이 되지는 않겠지만 일본 스스로에게는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며 오는 2016년까지 장기집권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베 총리가 앞으로 우경화에 한층 속도를 낼 것이라고 경계했다.
특히 9일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지지를 받은 마스조에 요이치 후보가 압승을 거두면서 국민들의 지지가 재확인된 만큼 야스쿠니 참배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비밀보호법 통과, 군비확충, 공영방송 NHK의 우경화 등으로 이어진 아베 총리의 위험한 행보는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아베 총리의 위험한 정치색이 부각되는 사이 그의 전매특허인 아베노믹스는 빛이 바랬다. 이날 재무성이 발표한 증권매매 통계에 따르면 해외투자가들은 지난달에 5개월 만에 일본 증시 '팔자'로 돌아서 한달 사이 1조529억엔(약 11조원)어치의 일본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는 2011년 8월 이래 가장 큰 규모다. 엔저 지속에도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 기록을 거듭 경신하는 사태가 이어지자 드디어 시장에서도 근본적인 경제개혁 없이 엔저만으로 수출확대와 무역흑자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접었다. 이날 재무성은 지난해 경상수지가 전년 대비 31.5% 줄어든 3조3,061억엔으로 비교 가능한 1985년 이래 최소 규모에 그쳤고 무역수지 적자폭은 전년 대비 83% 급증한 10조6,399억엔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시장 관계자를 인용해 에너지 수입 증대와 산업공동화로 엔저가 진행될수록 무역수지가 악화하는 산업구조가 고착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향후 재정적자와 경상적자가 동시에 나타나는 '쌍둥이 적자'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아베노믹스의 개혁을 기다리는) 시장의 인내력이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아베 총리는 중국을 자극하는 것보다 디플레이션을 끝내는 데 더 관심이 많다는 확신을 전세계에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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