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영역에서 인간이란 주제와 조각이란 장르가 외면 받고 있는 현실에서 인간을 테마로 다뤄온 중견 조각가 5명이 '인간, 그리고 실존'이란 주제로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신관 사미루에서 12월 29일까지 전시를 갖는다. 김영원(66), 홍순모(64), 김주호(64), 최병민(64), 배형경(58)의 작품에는 하나같이 생의 아픔과 그 실존적 연민이 녹아 있다. 이들 5인의 공통점은 시대의 유행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작업한 김영원 작가의 작품 키워드는 '소통'이다. 브론즈로 인체의 겉모습을 조각한 '중력 무중력' '그림자의 그림자' 등을 통해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현대인에 대한 연민을 담고 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항상 인도하소서' 등 작품 제목을 성경구절에서 인용하는 홍순모 작가의 돌 인물 작품의 키워드는 '구원'이다. 인천 강화도에서 주로 작업하는 김주호 작가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철판으로 빚었다. '대한민국' '해맞이' '나는 본다' 등 그의 작품에선 세상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다. 역동적인 율동을 담은 작품 '벽' '하늘풍경' 등을 선보인 최병민 작가는 첨단 기술로 급속하게 변하는 현대 문명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적인가를 되묻는다. 유일한 여성 작가인 배형경 작가는 '묵시-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녀의 키보다 훨씬 큰 180㎝를 넘는 인간 조각상이 쇠창살에 갇혀 고뇌하고 있다. 그는 "창살은 장대비를 표현하고 있는데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인간이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은 자유에 대한 갈증을 나타낸다"고 소개했다.
1전시실에는 홍순모ㆍ김주호ㆍ최병민의 입체작품과 드로잉이, 2전시실에는 배형경의 인체작업과 철 구조물이, 3전시실에는 김영원의 초기부터 근작까지 13점의 인체 작업이 자리하고 있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이들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영상물을 모니터 2대를 통해 상영한다.
한편 한평생을 농부와 같은 성실함으로 작업에 임한 고 김종영 화백의 유지를 받들어 김종영미술관은 지난 2010년 12월 신관 개관 이후 중견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초대전'을 1년에 4차례씩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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