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는 직선제 지속 여부에 대한 찬반 논란이 어느 때보다 크게 불거졌다. 특히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사전 여론조사 결과 유명 정치인 출신인 후보가 보수·진보 성향의 교육계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 같은 논란에 불이 붙었다. 유권자 대다수가 후보의 면면과 공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깜깜이 선거', 이름 표기 순서에 따라 당선이 좌우된다는 '로또 선거' 우려를 넘어 교육감 선거가 일종의 '인기투표'로 폄하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더해진 것이다.
한 교육부 공무원은 "교육이 전문화·고도화될수록 정치적 구호보다는 장기간 숙고한 '미세조정'으로 방향성을 만들어가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건만 정책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며 "정작 교육계에서 명망이 높은 전문인사들은 중립적 성향 등을 이유로 되레 출마를 꺼린다"고 씁쓸해 했다.
최근 들어 직선제 폐지 논란은 국가의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을 사실상 정치권의 몫으로 맡겨도 좋을지를 놓고 꾸준히 제기돼왔다. 직선제 이후 교육감의 이념 성향에 따라 학교 현장이 흔들리고 지역 내 정치 대립이 격화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감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서는 2년간 당적 보유 경험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현 교육감 선거는 보혁 구도에 맞춘 지역 후보 간 공동공약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 성향에 따른 편 가르기가 일반화되면서 사실상 '교육의 정치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교육감 후보들은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각각 혁신교와 자사고를 둘러싼 존폐 논쟁을 벌였다. 일부 보수 진영 후보들은 진보 진영의 작품인 혁신학교 폐지를 공동공약으로 내놓으면서도 기실 이름만 다를 뿐인 새로운 공교육 학교를 약속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일부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보수정권이 현실화시킨 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하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자사고 등장의 원인이 된 외국어고·과학고의 미래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말을 아꼈다. 결국 교육의 미래와 대안에 대한 고민보다는 정치적 당리당략에 따른 대응만이 학교 현장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당장 이번 선거로 교육계에서는 교육감 당선자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혁신학교가, 다른 지역에서는 자사고가 사라지는 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직선제에 소요되는 막대한 선거비용과 조직 동원력 등을 감안할 때 기존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지원 없이는 사실상 당선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게 교육감 후보군들의 현실적 고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거를 거듭할수록 당리당략에 국가 교육이 좌우되는 부작용이 깊어지고 있다.
이는 교육부의 정책 입안과 집행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교육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두 차례에 걸쳐 학교안전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차관이 주재한 첫 회의에는 각 시도 교육청의 국장급이 참석했다. 두번째 회의는 교육부 장관이 주최했지만 참석자로는 심리학자, 대학병원 교수, 안전관계 전문가 등이 전부였다. 교육부 장관과 시도 교육청의 교육감들이 머리를 맞대고 나라 교육의 현안을 고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교육부 예산에서 경직성 예산의 비중이 특히 높은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정치적 성향' 외에 각 시도 교육감과 '견제와 균형'을 이룰 축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는 게 교육계 일각의 우려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각 시도 교육청은 초중등교육 전담기관으로, 교육부는 대학 등 고등교육을 전담하는 부처로 이원화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교육감 직선제가 자리잡은 후 복지 관련 부서에서 격화돼온 '이념의 나팔수' 기능을 교육부처가 전담하게 된 것 같다"며 "현 공교육 논란의 핵심인 '평준화 40년'의 숙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교육을 교육계에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