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습니다. 당장 내년 초 미국산 도요타 캠리가 시장을 뒤흔들기 시작할 겁니다." (수입차업계의 한 관계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이르면 내년 1월1일 발효될 예정임에 따라 국내 자동차시장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엔고에 시달리는 일본차업계가 미국산 모델 도입에 나서는 한편 미국차업계는 다양한 라인업으로 시장 확대에 시동을 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비해 현대ㆍ기아차 등 국산차업계도 일찌감치 대응에 나서 국산차와 수입차 간 뜨거운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23일 수입차업계에 따르면 일본 브랜드들이 한미 FTA를 계기로 치밀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도요타ㆍ닛산ㆍ혼다 등은 미국 공장에서 만든 차량을 내년 한국시장에 대거 투입해 권토중래를 노릴 계획이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현재 8%인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는 내년부터 4년간 4%로 내려가고 5년째에는 철폐된다. 수입원가가 3,000만원짜리 차라면 관세가 24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인하 효과다. 선봉은 도요타의 중형 월드카 캠리다. 도요타는 내년 초 국내에 전개할 신형 7세대 캠리를 미국산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에서는 신형 캠리 풀옵션 모델이 2,700만원대(2만4,725달러)에 팔리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한국토요타가 신형 캠리 가격을 3,000만원대 초반에서 정하는 파격을 단행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또 도요타는 나카바야시 히사오 한국토요타 사장이 "앞으로 더 많은 미국산 차량을 한국에 소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캠리 외에 미국 생산 차종인 아발론ㆍ솔라라ㆍ하이랜더ㆍ벤자 등을 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닛산은 이미 미국에서 생산한 알티마를 국내에 들여다 팔고 있다. 당장 내년 4% 가격인하 여지가 생긴다. 아울러 닛산이 내년 국내에 소개할 인피니티 JX도 미국산이다. 혼다의 경우 이토 다카노부 글로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9일 한국을 방문해 "10개 이상 차종을 추가로 한국에 투입하려고 하는데 미국 공장 활용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본다"며 미국산 차량 투입을 예고했다. 혼다는 미국에서 어코드, 시빅, CR-V, 오딧세이 등 주력 차종을 모두 생산하고 있다. 유럽 브랜드 중에서는 벤츠 ML클래스와 BMW의 X3ㆍX5ㆍX6가 미국산이다. 이들 브랜드는 지난 6~7월 한ㆍ유럽연합(EU) FTA 발효에 따라 독일산 차량의 가격을 소폭 내렸는데 이번에는 미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값도 내릴 수 있게 됐다. 미국 브랜드의 경우 관세 4% 인하를 통해 얻어진 가격경쟁력을 통해 시장 확대에 나서는 한편 배기량 2,000㏄ 이상 차량의 경우 개별소비세가 현행 10%에서 단계적으로 5%까지 낮춰짐에 따라 소형차 도입을 추진하는 등 라인업 강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크라이슬러의 한 관계자는 "내년에 2,000㏄급인 '200'을 들여와 판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국산차업계는 시장 수성을 위해 일찌감치 수입차 견제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이달부터 수입차 보유 고객이 현대차를 구매하면 최대 100만원의 할인 혜택을 주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차업계는 물론 일본차업계는 한미 FTA 발효를 현대ㆍ기아차의 시장을 잠식할 계기로 삼을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부터 흥미진진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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