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레와 프랑스 요리. 둘에는 프랑스에 꽃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원조는 어디일까. 메디치 가문이다. 교황령과 나폴리·밀라노 공국·베네치아와 함께 15~16세기 이탈리아의 세력 균형을 이루던 피렌체를 지배한 가문이 바로 메디치다. 15세기께 역사에 등장해 1748년까지 약 350년간 명맥이 이어졌다. 레오 10세 등 교황 3명을 배출했다. 메디치가 출신의 두 명의 프랑스 왕비는 발레와 궁정요리를 퍼뜨렸다.
△코시모 데 메디치(2대)는 유럽 16개 도시에 은행을 세워 막대한 재산을 쌓았다. 학문·예술을 장려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켈란젤로·보티첼리·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도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다. 유럽을 호령하던 메디치가에도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평민 출신이며 '천한 은행업'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점이다. 평민 출신이 가톨릭 교리와 부딪히지 않으면서 이자사업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문화활동을 아낌없이 후원했다고 전해진다.
△피렌체와 한국과의 첫 인연은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들이 납치해간 조선인을 노예시장에 내놓자 피렌체의 상인 카르레티가 소년 다섯명을 헐값으로 사서 이 중 한 명을 피렌체로 데려갔다. 이 아이가 꼬레아성(姓)의 시조로, 후손들은 시칠리 콜레오네(코리아나란 이탈리어어)가문을 이뤘다. 현재의 시칠리 코레오네가 이들의 고향이다. 한국인들은 피렌체와 메디치가문의 이야기를 보다 많이 접하게 될 것 같다.
△신세계그룹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청년 인재육성에 올해부터 매년 2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정용진 부회장이 인문학 콘서트인 '지식 향연'에 직접 참여해 인문학 전파에 나선다고 한다. 인문학과 문화예술을 후원해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메디치 가문의 역할을 한국에서는 신세계가 하고 싶단다. 인문학 위기의 시대, 신세계의 의미 있는 실험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 한국의 르네상스가 만개하기를 기대해본다. /임석훈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