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일본이 등재를 신청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규슈-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은 독일 본에서 개최 중인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4일(현지시간) 오후에 등재 심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조선인 강제노동에 대한 한일 간 이견이 계속되자 심사 일정을 5일로 하루 미뤘다. 세계유산위원회가 등재 심사를 미룬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한일 간 합의를 위해 시간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등재 심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한일 양국 간 협상의 마지막 돌발 변수는 우리 정부 대표단이 등재 심사 과정에서 위원국들을 상대로 언급할 발언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측은 발언문 초안을 우리 측으로부터 받고 사전조율을 요구했지만 우리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난색을 보여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 측은 강제노동 등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표현 수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의 5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일본이 등재를 추진 중인 23개 시설 중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 등 7개 시설에서 조선인들의 '강제노동(forced labour)'이 있었으며 해당 시설에서 일한 조선인 노동자 수와 사망자 수를 명기하기를 원하고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당시 노동환경이 가혹했지만 대가가 지급됐고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으므로 '강제노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또 일부 시설에서 조선인 노동자가 일한 것은 인정하지만 숫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앞서 한일은 지난달 21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협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자는 공통인식을 공유하는 등 큰 틀에서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한일은 등재 결정문에 주석을 다는 형식으로 해당 시설에서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데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강제노동을 어떤 내용과 수준으로 표현할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통상 세계유산위원회는 유산 등재를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일이 막판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인 '표대결'이나 자유토론을 통한 결정 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표결시 3분의2가 찬성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다수 위원국의 기권이 예상되는 만큼 의장국인 독일이 결론을 내는 시점을 내년으로 미룰 가능성도 있다. 한일 양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지난달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마련된 대화 분위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등재를 신청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규슈와 야마구치 지역 8개 현 11개 시에 있는 총 23개 시설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나가사키 조선소와 하시마 탄광 등 7곳에 조선인 약 5만8,000명이 징용돼 강제로 노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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