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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불현듯 우울함이 엄습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으로 물들었다. (중략)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혼자서 불안에 떨면서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1863~1944)는 지난 1892년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고 이는 이듬해 완성한 대표작 '절규(Scream)'를 해석하는 실마리로 종종 인용된다. 공황장애를 겪은 뭉크의 개인적 경험은 작품을 통해 세기말 인류가 느꼈던 근원적 불안감에 대한 성찰로 연결됐다. 인간의 심원적 고뇌를 표현한 '절규'를 비롯한 뭉크의 작품 99점이 3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에드바르드 뭉크-영혼의 시' 전시를 위해 한국에 왔다.
스테인 울라브 헨릭센 뭉크미술관 관장은 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서 이처럼 대규모 뭉크 회고전을 연 것은 처음"이라며 "전세계가 '절규'를 알지만 정작 화가 뭉크나 그의 고향인 노르웨이 오슬로에 뭉크미술관이 있다는 것은 잘 모르기에 이번 전시가 뭉크의 삶과 작품세계를 아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뭉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활동하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등과 친분을 유지해 진보적 사상과 보헤미안 철학, 상징주의 예술을 접했다. 이들과의 교류는 전시된 초상화에서도 감지되는데 작가는 이 같은 사회 격변에서 예술적 변혁을 끌어냈다.
전시를 기획한 욘 우베 스테이하우그 뭉크미술관 수석큐레이터는 "뭉크가 불안·우울 등 어두운 감정을 주로 그렸지만 정작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현대인의 고뇌를 들여다볼 인간의 근원적 감정이었다"며 "'생의 기쁨' '태양' 등 삶에 대한 긍정을 표현한 작품을 보면 주제의 밝고 어두움에 상관없이 응축된 감정과 긴장감을 담아냈다는 게 중요한 의미"라고 설명했다.
특이하게도 전시장 입구에는 공항 출입국심사대에서 볼법한 금속탐지기가 설치돼 있다. 뭉크의 작품이 유독 자주 도난사건에 연루된 탓이다. 2012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파스텔화 버전의 '절규'가 약 1,355억원에 팔려 세계 최고가 경매기록을 세우는 등 유명세도 한몫했다. 작품과 동행한 트릭베 라우리젠 뭉크미술관 보안총괄은 "갓난아기와 여행하는 것 같은 엄격한 보안기준이 적용된다"며 "보안규정조차 '보안상의 이유'로 알려줄 수 없다"는 말로 노르웨이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을 드러냈다.
뭉크는 평생 2만여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판화가 1만8,000점에 이를 정도로 판화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절규'는 잡지 삽화 등을 통해 작가를 알리는 데도 활용됐다. 오슬로 뭉크미술관은 뭉크가 사망 직후 기증한 2만여점의 소장품을 갖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절규'도 석판화 작품이다. 전시는 붉은 배경 속에 반라의 뭉크가 관객을 응시하는 '지옥에서의 자화상'으로 시작해 삶·생명력·밤 등의 주제로 펼쳐진다. 삶에 대한 경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대형 유화 '생의 춤'과 성모마리아를 지칭하는 '마돈나'라는 제목으로 임신한 여인을 관능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백미다. 오는 10월12일까지.(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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