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제도 시행 후 9개월 동안 접수된 조정ㆍ중재 신청 503건 가운데 54.3%가 의료기관의 거부로 조정이 무산됐다.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치료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피해를 구제받고자 하는 환자의 시간ㆍ금전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해 4월 도입됐다. 중재원의 조정을 받으면 길어야 4개월 이내에 2만2,000~16만2,000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민사소송이 평균 26.3개월이 걸리고 소송을 제기하는 데만 평균 500만원(1심 기준)의 비용이 드는 것을 고려하면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편리한 제도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저조한 참여로 많은 환자들이 이 제도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절대 다수의 분쟁 조정은 환자가 의사에게 신청하는데 조정이 시작되려면 피신청인인 의사의 동의가 필요하다. 의사가 동의하지 않으면 환자는 피해를 원천적으로 구제받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들은 사고 감정단에 전문가인 의사 비율이 적고 의료기관이 배상금을 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미리 돈을 내게 하는 '손해배상 대불 제도' 등에 문제가 있다며 조정제도 불참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 지난해 8월 의협은 회원들에게 '조정 신청에 응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으니 조정에 참여하지 말라'고 공지문을 돌리기도 했다.
중재원 관계자는 "보통 사고감정단은 2명의 의사와 2명의 법조인, 1명의 소비자권익위원으로 이뤄진다"며 "의료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반영해야 공정한 평가가 가능한 만큼 의사협회 측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손해배상 대불 제도에 대해서도 "지난해 12월 행정법원에서 해당 제도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조정을 시작하려면 의사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의사 동의 없이 조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법안 개정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중재원에서도 조정 제도가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에게도 유리한 제도라는 것을 알리는 등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조정ㆍ중재가 접수된 503건의 의료 분쟁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치료 중에 발생한 분쟁이 257건(51.1%)으로 가장 많았다. 사망 후 분쟁도 127건(25.2%)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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