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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펀드의 해외투자 비중이 절반에 육박한 가운데 국내 기관들 역시 해외 부동산 및 대체투자 확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최근 경상수지 흑자로 쌓여가는 달러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국내 큰손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성기섭 한국교직원공제회 기금운용총괄 이사는 "그동안 해외투자에 소극적이었던 보험사들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앞으로 이 같은 흐름이 점점 빨라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단적인 예로 지난 4월 국민연금과 군인공제회 등 국내 기관들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물류센터를 1,500억원에 매입했다. 이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투자를 진행한 곳은 '해외대체실'이 아닌 국내 대체투자를 담당하는 '대체투자실'이다. 국민연금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해외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해외대체실에서 담당하지만 국내 펀드를 통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대체투자실도 가능하다"며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피스 위주에서 투자지역 및 투자대상 다변화=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최근 해외투자 흐름은 투자지역 및 대상의 다변화다.
실제로 과거에는 주로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 주요 도시의 오피스빌딩에 관심을 뒀지만 최근에는 남유럽과 동유럽 등 그동안 관심이 크지 않았던 지역에서도 적극적으로 투자대상을 발굴하고 있다.
황태웅 도이치자산운용 대표는 "그간 국내 기관들이 주로 관심을 가졌던 유럽의 런던·프랑크푸르트·파리와 미국의 뉴욕·보스턴·시카고 등 선진국 대도시는 2013년 후반기부터 자산가격이 10~20% 정도 상승했다"며 "수익률이 다소 낮더라도 안정성이 높은 선진국 코어애셋(핵심자산)을 노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탈리아·스페인·폴란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 이사도 "앞으로 리스크가 다소 있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지역의 자산을 대상으로 투자전략을 펴는 기관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리스크 대비 수익률을 감안해 선순위와 후순위의 중간인 메자닌 투자전략을 추구하는 경우도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젠스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메자닌대출은 하나자산운용의 베트남 쇼핑몰, 삼성SRA자산운용의 미국 하와이 포시즌호텔 등 최소 4건이다.
비오피스 자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지난달 26일 설정한 '유럽재간접사모 부동산투자신탁52'는 폴란드 물류센터에 투자하며 '이지스해외간접PTELF 사모부동산투자신탁46호'도 물류를 투자대상으로 삼고 있다.
◇블라인드펀드 활성화 등 빠른 의사결정 속도 필요=정부의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에 맞춰 국내 기관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 규모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외국 자본까지 가세하면서 해외 부동산 시장에서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내 기관들이 해외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최근 한국투자운용이 농협생명·한화생명 등 국내 기관들과 주축이 돼 인수하려 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트리아논' 빌딩의 경우 협상 막판에 다른 매수인에게 넘어갔다.
한투운용의 한 관계자는 "기존 미국 및 유럽계 자금뿐만 아니라 중국·아랍계 자금들도 밀려들고 있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이라며 "국내 큰손들은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데다 투자 의사결정 과정이 너무 늦어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해외 기관들의 경우 투자대상 선정 후 자금집행까지 빠르면 한 달 안에 완료되는 반면 국내 기관들은 최소 2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블라인드펀드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블라인드펀드들의 자금이 많이 축적됐고 연기금과 국부펀드들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 국내 기관의 경쟁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며 "국내 연기금들도 블라인드 형태로 일임자산을 확대해 의사결정 속도를 빠르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한국 투자자들은 부동산 투자를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어 블라인드펀드 설정이 쉽지 않은 실정"이라며 "국내 기관들이 해외 기관들과 제대로 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블라인드펀드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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