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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6,000만원 이상 고가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 시행으로 가뜩이나 작은 국내 미술시장은 더욱 위축됐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세정의 대원칙이 있기에 양도세 부과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과세 등 정책시행 이전에 구조적으로 취약한 국내 미술시장의 상태 점검을 더욱 세심하게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현장과 동떨어진 문화진흥책=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매년 발간하는 '미술시장 실태조사' 등에 따르면 국내 미술품 거래량(작품 거래 수)의 80%는 개인 구매자에 의존하고 있다. 나머지는 기업이나 법인 및 정부기관이다. 개인 거래자 또한 수가 많지 않다.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자체 미술품 거래고객의 수는 1,000명을 넘지 않는다. 미술시장이 산업화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미술시장이 초기 단계에 그치고있기 때문에 양도세 과세와 함께 미술품 구매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금 감면 확대 등 시장 활성화 대책이 동시에 나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한 개인 고객에 치중돼 있는 미술시장의 기형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기업과 기관이 미술품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쪽으로 정책방향이 맞춰져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올해 1월부터 법인의 미술품 구입시 즉시 손금산입한도를 기존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개정됐다. 문화와 예술 창작활동을 장려하며 국민들의 문화수요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러나 미술계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엔 500만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 양대 경매회사에서 거래되는 작품 평균가가 3,50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당초 논의됐던 3,000만원 수준을 지켰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며 "500만원 손비처리는 현장을 모르는 결정이라 시장에는 별 영향없는 근시안적 정책"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공공미술관 예산이 유명작품값 하나도 안돼=미술품에 대한 민간 수요가 위축됐으니, 미술계는 기관에 해당하는 '미술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술관의 구입 여건 역시 열악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서울관까지 개관해 규모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소장품 구입예산이 36억원 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예산은 지난해 22억원이던 것마저 감축돼 20억원으로 잡혔다. 미술관의 한해 예산을 다 쏟아부어도, 양대 공립미술관의 구입예산을 합해도 외국 거장의 작품 한 점도 못 사는 게 우리 미술계의 현실이다.
미술관 콘텐츠의 핵심인 소장 미술품이 초라하다 보니, 관람객 확보에 있어 경쟁력도 떨어진다. 세계 미술관 통계를 집계하는 영국의 미술전문지 '아트뉴스페이퍼'가 지난달 발표한 '2013 연간 미술관 관람객 수'에 따르면 부동의 1위인 파리 루브르박물관이 934만명에 이어 런던 대영박물관이 670만명,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623만명 순이었다. 눈에 띄는 결과로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이 아시아 소재로는 유일하게 7위에 올라 450만 관객수를 자랑했다. 유료관람객 전시에서는 1위를 기록한 대만고궁박물관을 비롯해 이들 박물관·미술관이 경쟁력을 확보한 이유는 소장품에 기반한 풍성한 볼거리, 즉 콘텐츠의 경쟁력이었다. 10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난해 관람객 수는 120만 명이었으며, 외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1만7,500여명으로 1%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싱가포르의 경우 미술시장을 '공해없는 럭셔리 시장'으로 판단해 전폭적인 지지 정책을 펴고 있다. 싱가포르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일종의 '미술품 보세지역'인 프리포트(Free Port) 매니지먼트 를 벤치마킹했는데, 미술 유관 산업인 운송, 전시, 판매, 보관 등의 시설을 한곳에 모아 세금 부담없이 전시할 수 있게 했고, 싱가포르 국내 거래시 소비세가 없고 수출시 관세가 없는 혜택을 주고 있다. 때문에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아시아 수장고도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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