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1월15일, 영국이 미국의 금융회사 JP모건과 전쟁물자 구매 대행계약을 맺었다. ‘대영제국의 군수품 매매를 일개 외국 회사에 맡길 수는 없다’는 반대론이 없지 않았지만 영국은 앞뒤를 돌아볼 처지가 아니었다. 1차 대전이 장기화되며 군수품 보급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1차 대전 발발 직후 뉴욕증시가 5개월간 휴장하고 농산물 수출도 격감한 미국도 전쟁에 말려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모건하우스의 계산은 달랐다. 전쟁은 커다란 수익원이라는 것이다. 그랬다. 연합국의 병기제조창이 된 미국의 경기는 활활 타올랐다. 영국은 미국산 무기 구매에 5,000만달러를 책정했으나 실제 지출은 30억달러선에 이르렀다. 프랑스와 같은 계약을 맺은 모건하우스가 한달간 연합국을 대신해 사들인 무기대금은 한 세대 전의 세계 경제 총생산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미국제 총과 대포, 군함과 비행기 등 무기류는 물론 철조망에서 쇠고기ㆍ차량ㆍ의족까지 모조리 유럽으로 실려나갔다. 덕분에 중소업체였던 듀폰사는 연합국 탄약의 40%를 공급하며 세계 1위의 석유화학 업체로 부상하고 농축산물 수출도 5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은 수출과 모건의 수수료(매매금액의 1%)뿐 아니라 뜻밖의 부대수입까지 거뒀다. 미국 농업이 대형화ㆍ기계화한 계기도 농부들이 유럽에 군마(軍馬)로 팔려간 말을 대신할 트랙터를 사들인 덕분이다. 런던과 파리 등지의 외국인이 보유하던 미국 내 우량주식도 싼값으로 되살 수 있었다. 국가 재정도 펴져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었던 미국은 최대의 채권국가로 탈바꿈했다.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태워 불 쬐고…’ 같은 말이 바로 이런 경우에 딱 어울린다. ‘전쟁과 모건.’ 미국은 2차 대전에서도 이런 호황을 톡톡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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