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성장기를 가상한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세상을 사는 큰 지혜를 가르쳐준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현실을 사는 작은 도리를 알려준다. 부모로부터 '전술'을 배운다면 조부모에게서 '전략'을 깨닫는다 할까.
요즘의 세태는 어떠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아이가 자신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당신은 계모야"라고 반문하고 손자손녀를 봐주러 온 할머니에게 "왜 남의 집에 와서 밥 먹고 잠자고 그래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물론 과장이다. 그러나 여기에 오늘의 우리 가족이 마주한 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 과도한 입시 경쟁 아래 살아가면서 자기 생존을 위해 발버둥칠 수밖에 없다. 공공재로서 교육이 수월성과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나머지 사람이 되기 위한 훈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그러지 않아도 현대사회의 개인화 추세 아래 이들이 성인이 되면 자신들이 살아가기 바쁘다 보니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화합하기보다 갈등하는 이유가 많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인성교육이 가정과 학교에 모두 고갈돼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한가운데 가족의 변화가 놓여 있다. 단순히 대가족제에서 핵가족제로의 형태의 변화가 아니다. 친족이라는 대대로 이어지는 혈연의식은 약화되고 대신 부부 중심의 수평적 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가족이란 생활 공동체가 이익 추구의 결사체로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올해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450만을 넘어서 오는 2015년에는 500만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 1인 가구 비중이 25.3%로 2인 가구 비중 25.2%를 넘어섰다. 1인 가구 구성비는 아직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지만 다른 아시아 나라들보다 높다. 중요한 사실은 미혼(未婚)보다 비혼(非婚)이 많아지고 있고 사실혼이나 단순 동거와 같이 비(非)표준적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을 원하나 못하고 있는 미혼보다 결혼 자체를 하고 싶어하지 않은 비혼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방식의 파트너혼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결혼과 동거의 중간 형태라 할 계약결혼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고 일종의 파트너혼으로 결혼에 접근한다.
그렇다고 한국 사회에서 서구처럼 탈(脫)근대적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부 중심의 핵가족주의가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대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남아 선호가 여아 선호로 바뀌고 있는 것처럼 혈연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가족주의가 친밀성을 중심으로 하는 핵가족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출산율 저하, 이혼율 증가, 3세대 동거 감소 등도 여성의 교육 수준과 경제능력의 향상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표준가구 중심의 가족정책이 역설적으로 가족의 해체를 가져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등장에 걸맞은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이나 독일의 '생활동반자관계' 법안처럼 비표준 가구를 돌볼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표준가구에 들어가지 않는 사실혼이나 단순 동거 가족을 위해 보육ㆍ의료ㆍ주거ㆍ상속 등에서 동반자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결혼과 출산에 관한 생애주기가 바뀌고 있다.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비혼의 증가, 그리고 출산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등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는 생산력의 하락을 통해 미래 자본 축적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급격히 바뀌고 있는 가족 형태를 따라갈 수 있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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