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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는 말이 없다. 급하게 흐름은 누구를 이롭게 하고, 누구에게는 방해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누구를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운명일까. 수만년 동안 흐르던 바다가 이제 이순신과 동일체 운명이 돼 버렸다. 이젠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이순신의 용기와 신념을 느낄 수 있는 사색과 교육의 장이다. 오늘도 이 바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는다.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 사이의 좁은 수로 '울돌목'이 그러하다.
영화 '명량'의 인기에 힘입어 울돌목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바다가 얼마나 세게 흐르는지 '물이 울면서 돌아가는 곳'이라 해 울돌목, 즉 한자로 명량(鳴梁)이 됐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해안이 간척사업을 통해 크게 바뀌었지만 울돌목은 거친 지형관계로 예전의 모습 그대로다. 물론 육지 쪽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관광시설들이 오히려 현실을 영화처럼 보이게도 한다.
◇물이 울면서 돌아가는 울돌목=울돌목은 원래부터 신기하게 보이는 바다다. 울돌목은 진도군 군내면과 해남군 문내면 화원반도 사이에 있는 약 2㎞의 수로를 말한다. 너비는 가장 좁은 곳이 280m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나라 해역에서 조류가 가장 빠른 곳으로 최대유속이 11.6노트에 달한다(2위는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로). 그러던 울돌목이 영화 한 편에 말 그대로 스타가 돼 버렸다.
자동차로 해남군을 관통해 울돌목을 목표로 가다 보면 왼쪽에 '우수영관광지'라는 팻말이 나온다. 해남군은 이 지역에 우수영관광지를 지정하고 울돌목 바로 옆에 '명량대첩 기념공원'을 세웠다. 기념공원은 전시관과 함께 울돌목을 바로 옆에서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가 절경이다. 거북선 모형, 석상, 명량대첩 기념탑 등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최고의 인기는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이다. 바닷가에 위치해 관광객들에게는 최고의 기념촬영 장소다.
반대편 진도군에서도 '녹진관광지'를 지정하고 관련 시설들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진도대교를 건너면 바로 오른쪽에 '이충무공 승전공원'이 나온다. 30m 규모의 국내 최대 높이라는 이순신 동상이 우뚝 서 있고 승전무대라는 조망 포인트가 있다. 명량대첩 기념공원이 울돌목의 수로를 조망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실제 명량해전이 벌어졌던 전투지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명량대첩 축제의 주 이벤트인 해전재현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풍경이 가장 좋은 곳은 진도타워다. 망금산 정상에 서 있는 높이 60m의 전망대에 오르면 울돌목 수로가 한눈에 보인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전라우수영이 있던 해남 우수영항과 이순신의 수군이 명량해전 직전에 머물렀던 진도 벽파항도 볼 만하다. 우수영항에서는 제주도까지 페리가 운항한다.
대부분의 시설을 입장료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것도 편리하다. 명량대첩 기념공원과 진도타워가 어른 기준 1,000원을 받고 있는 정도다.
◇13척 대 330여척이 싸웠다=영화 '명량'만 봐서는 이 전투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극적 효과를 위해 어느 정도 왜곡은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원래의 사실(史實)은 사실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실제 수로는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넓지 않다. 1597년 9월16일 명량해전에 수백 척의 왜선이 참전했다고 해도 수로 폭이 좁아 한 번에 5~6척 정도가 진입하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이순신의 함대가 버틸 수 있는 규모다.
최대의 논란거리는 전투에 투입된 양국 전선의 숫자다. 영화는 12척의 조선 전선이 330척을 맞아 싸웠다고 하는데 명확하지는 않다. 기록마다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조선의 전선 규모는 크게 12척과 13척으로 주장이 갈린다. 일반적으로는 이순신이 임금에게 보고한 12척(今臣戰船 尙有十二)과 여기에 1척이 추가된 13척으로 전투에 임했다고 본다.
왜선의 규모는 더 논란거리인데 당시 기록에서도 133척에서 333척, 혹자는 500여척이라는 곳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조카인 이분이 쓴 '행록'에 따라 333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행록'은 조선 전선은 10여척으로 썼다). 이 중 130여척이 울돌목 수로로 진입해 실제 해전에 투입됐다. 바로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지휘한 돌격대다. 도도 다카도라와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끈 나머지 200여 척은 후방에서 대기했을 것으로 본다.
영화에는 거북선이 나오지만 사실은 아니다. 임진왜란 발발 전에 만들어진 거북선 3척은 앞서 7월의 칠천량해전에서 모두 침몰했다. 새로 건조 시도가 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패전으로 전력 손실이 심각한 상황에서 거북선같이 비싼 무기를 만드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기존에 많이 언급됐던 쇠사슬을 바다에 걸었다는 설도 믿기 어렵다. 당시 기술로는 쇠사슬 무게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이순신 암살 시도를 하는데 이것도 지나친 설정이다. 배설은 칠천량에서 전투 중 도망친 과거가 있는데 이번 해전에도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결국 명량해전 보름 전인 9월2일 탈영한다. 고향에 숨어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잡혀 처형된다.
◇계획적 개발과 보전이 필요=울돌목이 이순신 장군과 거의 동의어가 되고 있지만 난개발이 우려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해남군과 진도군은 경쟁적으로 울돌목에 관광시설을 만들고 있다. 해남군은 우수영관광지, 진도군은 녹진관광지를 개발하고 있다. 지금 울돌목 전체가 관광시설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도군은 2013년 진도타워, 올해 8월 이충무공 승전공원 완공에 이어 현재는 진도타워와 바로 아래 녹진광장을 잇는 모노레일 공사를 내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해남군은 우수영관광지에 8층 규모의 전시관을 새로 짓고 있다.
이미 울돌목 인근에 있는 이순신 동상은 10여개나 된다. 진도대교 입구 양쪽에 서 있는 것을 비롯, 울돌목 곳곳에는 이순신 동상들이 산재해 있다.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처럼 나름 신경 써서 만들어놓은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많다. 여기에 판옥선에 거북선에 온통 배들로 해안가가 덮여 있다. 전망대도 배 모양이다.
대신 소홀한 것도 있다. 유적지가 그렇다. 조선 숙종 때 만들어진 보물급 '명량대첩비'는 해남군 문내면 한쪽 귀퉁이에 숨겨져 있어 방문객도 뜸하다. 진도군 '강강술래터'는 여전히 밭으로 남아 있다.
/해남·진도=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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