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사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미국의 출구전략에 따른 신흥국의 자금 엑소더스(대탈출)와 관련해 자본시장 규제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2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향후 행동이 자금유출을 촉발할 경우 해당국들은 규제를 조일 수 있다"며 "일시적 자본규제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합당한(reasonable) 방법"이라고 밝혔다.
사실 IMF는 지난해 12월에도 보고서를 통해 "해외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 환시장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을 때 해당 국가는 자본규제 정책을 도입할 수 있다"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권고하던 입장을 창립 이래 67년 만에 수정한 바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당시 "자본규제를 발동해도 되는 상황에 대한 세부사항이 결정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한계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번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은 '연준의 행동으로 자금유출이 촉발될 경우'라는 구체적인 시기를 적시해 언급했다는 점에서 지난번 IMF 보고서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ㆍ브라질 등 신흥국들의 외환정책 운용의 폭도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라가르드 총재가 자본유출 규제를 좀 더 직접적으로 권고한 것은 미국의 출구전략 가능성에 신흥국 금융시장이 극도의 불안양상을 띠는 탓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JP모건이 집계하는 신흥국환율변동성지수는 20일 11.87로 1년여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26일에도 11.27을 기록했다.
또한 미국의 출구전략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신흥국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것도 이번 발언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와 관련, 국제금융협회(IIF)는 신흥국으로부터의 민간자본 유출이 올해와 내년 모두 1조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26일 발간했다. 헝 트란 IIF 사무부총장은 "(출구전략으로) 고도의 불확실성이 오랜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은)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변화한 IMF 입장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우리나라는 자본유출을 막기 위한 정책운용에 힘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이주호 국제금융센터 부장도 "출구전략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 정책운용의 공간이 넓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의 출구전략이 점진적으로 실행된다면 전세계는 이를 큰 문제없이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의 출구전략이 단계적으로 실행되고 (경제주체들과의) 활발한 의사소통이 함께 이뤄진다면 세계 경제는 중대한 문제 없이 이를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라가르드 총재는 "과거의 개도국은 미국의 정책금리가 오르면 자금이 유출돼 재정과 경제에 충격을 받았지만 이후 펀더멘털을 강화해왔다"며 "개도국이 출구전략에 따른 희생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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