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동십자각] 검찰의 비극


지난 1907년 고종 황제 밀명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된 이준은 우리나라 1세대 검사 중 한 명이다. 이준 열사는 1895년 개설된 법관양성소를 이듬해 1기로 수료한 뒤 한성재판소 검사시보(試補)로 임명됐다.

하지만 그가 정식 검사로 활동한 것은 10여년 뒤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일본으로 망명길을 떠나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다 1906년에야 비로소 정식 검사로 임관했다.

강직했던 검사 이준은 부패한 조정 관료의 비행을 서슴없이 적발해내 명성을 떨쳤다. 1907년 3월에는 친일파 법부대신 이하영 탄핵에 앞장 섰지만 면직이라는 역풍을 맞는다. 이 검사의 기개를 눈여겨본 고종은 그를 만국평화회의 밀사로 파견했다.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하자 이준 열사는 분을 못이긴 채 현지에서 숨을 거둔다.

2005년 검찰은 부패 친일 관료에 맞섰던 이준 열사를 검사의 모범으로 삼으려 '이준 검사상'을 만들려 했다. 아쉽게도 이준 검사상은 아직도 제정되지 못한 채 추진 중이다. 이준 열사가 정식 검사로 활동한 기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 등이 걸림돌이었다. 고민에 빠진 검찰은 그를 대신할 인물을 찾았지만 실패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하자 없는 인물을 찾기 쉽지 않았다.



실제로 취재 현장에서 만난 검사들에게 존경하는 검사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먹통이 되고 만다. 존경할 만한 검사 이름을 선뜻 떠올리기가 힘든 게 우리 검찰의 현 주소다. 존경할 만한 검사 한 명 가슴 속에 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면 이는 검사의 비극이다.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낙마하자 검찰은 침울한 분위기다. 헌정사상 대법관 후보자 낙마는 처음인데 그것이 하필 검사 출신이라는 데 검찰은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그만하면 대법관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김 후보자를 두둔했지만 국민들의 눈높이는 달랐다.

김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계기로 검찰은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서슬 퍼런 칼을 휘두르는 검사에게 존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다. 진지한 성찰이 없다면 검사상 앞에 붙일 이름을 찾지 못하는 검찰의 비극은 오랫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