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이 양분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총재직에 자국이 지지하는 인사를 추천함으로써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에 도전장을 던졌다. 빠른 경제성장을 자신감으로 군사ㆍ에너지ㆍ외교 등에 이어 국제금융시장에서도 러시아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러시아가 오는 10월 사임하는 로드리고 라토 총재의 후임으로 조셉 토소브스키(사진) 전 체코 총리를 추천했다고 보도했다. 토소브스키 전 총리는 체코 중앙은행 총재로 7년간이나 활동한 금융전문가다. 러시아가 토소브스키를 지명한 것은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사진) 전 프랑스 재무장관을 지지하기로 합의한 유럽연합(EU) 국가들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서 “현행 국제 금융ㆍ무역 기구는 낡고 비민주적이며 덩치만 크다. 러시아 등 신흥 국가들의 경제력을 반영하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며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 중심으로 짜여진 이들 기구의 개편을 강력하게 요구한 바 있다. 러시아의 도전은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력에서 비롯된다. 러시아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6.5%를 기록하는 등 최근 고성장을 지속해 오는 2020년에는 세계 5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FT는 “러시아가 서방세계에 대항할 중심 축이 되길 원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이런 의도는 중국과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 국가들의 부상과 맞물려 서방 국가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945년 설립 이래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 IMF 총재는 유럽 출신이 맡는 것이 미국과 유럽간의 묵계였다. 최근 여자 친구 특혜 스캔들로 중도 하차한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의 후임에 미국 출신인 로버트 졸릭 전 미 국무부장관이 취임했다. 이에 따라 차기 IMF 총재 역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추천하고 EU 회원국들이 지지하는 스트로스 칸이 유력한 상태다. IMF 총재는 24명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선출한다. 현재 24명의 이사 가운데 EU 회원국 출신은 7명으로, 러시아가 비유럽 이사를 얼마나 설득하는지에 따라 비유럽인 총재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비유럽 후보로 아르미니오 프라가 전 브라질 중앙은행총재, 트레버 마뉴엘 남아공 재무장관,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중앙은행총재등도 거명된다. 알렉세이 쿠드린 러시아 재무장관은 “토소브스키를 추천한 것은 금융위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IMF의 권위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라며 “IMF는 변화가 필요하며 중국과 인도ㆍ브라질도 이런 의도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대통령도 IMF와 세계은행의 미국 및 유럽 독식에 강한 비판을 제기한바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