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그동안 근로시간을 현행 주 68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52시간(법정 40시간+연장 12시간)으로 단축하자는 데까지는 합일점을 찾았으나 시행방안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야당과 노동계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16시간의 휴일근로를 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해 즉각·전면적으로 시행할 것을 주장한 반면 여당과 경제계는 기업 규모와 업종별로 처한 상황에 따라 법을 보다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맞서왔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후진적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한국 근로자들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012년 기준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터키에 이어 두번째로 길 뿐 아니라 OECD 평균인 1,705시간과 견줘도 무려 387시간이나 많다고 하니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보면 여당과 경제계의 주장을 마냥 흘려들을 수 없는 처지다. 시간당 29.7달러로 OECD 평균 44.6달러에 크게 뒤지는 한국의 노동생산성 수준에서 갑자기 주당 16시간이나 근로시간을 줄이고도 경쟁력을 유지할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서울경제신문(4월8일자 1면)에 따르면 근로자들도 노동시간 단축으로 최고 25%까지 임금결손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마당에 근로시간을 급격히 줄이는 게 반드시 바람직한 일인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번 여야 협상실패로 산업현장에 대혼란이 빚어지게 됐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토·일요일 근무가 연장근로에 포함된다는 결정이 나올 경우 휴일근무를 하는 사업장의 대표는 당장 범법자가 된다. 따지고 보면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예민한 사안을 정치권이 나서 해결해보겠다고 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노사 모두 한발짝도 양보할 수 없는 문제를 다른 노동현안과 묶어 '패키지딜'로 처리하려 한 것도 실책이었다. 노사 자율로 풀 수 있는, 또 풀어야 할 과제를 자꾸 법으로 강제하려는 게 바로 규제다. 이제라도 근로시간 단축 입법화를 위해 대통령 직속 노사정위원회를 빨리 가동해야 한다. 공식 기구인 노사정위가 빠진 채 노동현안이 입법·사법부에 끌려다니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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