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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가구가 사는 구역을 1,126가구로 재개발하면 결국 조합원이 아닌 세입자들은 이제껏 살던 터전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를 위한 재개발입니까." (박진석 신길9구역 재개발반대모임 위원장)
"준공 안 된 상태로 그냥 사는 집만 80여채나 됩니다.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철골이 앙상히 드러난 집도 있어요. 여기서 재개발을 중단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길9구역 조합 관계자)
추진위원회ㆍ조합 등 추진 주체가 있는 뉴타운ㆍ재개발 구역의 실태조사를 실시한다는 서울시의 발표 이후 해당 구역의 찬반 주민들의 반목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이제껏 사업이 원활이 진행돼왔던 구역조차 실태조사로 갈등이 수면위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겨울 한파가 매섭던 10일 서울경제신문이 찾은 신길뉴타운 9구역. 곳곳에 조합원 분양신청 접수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지만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은 벽보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시범사업지로 선정돼 오는 15일 첫 실태조사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지역 조합과 재개발 반대모임 사이엔 영하 10도를 밑도는 겨울날씨만큼 냉랭한 공기가 흘렀다.
신길9구역은 지난 2010년 조합을 설립해 8월 구청으로부터 사업시행인가까지 받아 현재 분양신청을 받고 있을 만큼 신길뉴타운에서 사업 진행속도가 가장 빠른 구역 중 하나다. 하지만 서울시의 출구전략 발표 이후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실태조사를 신청하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9구역 변두리 오르막길 꼭대기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박진석 신길9구역 재개발 반대모임 위원장은 "조합이 재개발 후 지금 살고 있는 면적 그대로 옮겨갈 수 있을 만큼 사업성이 좋다는 거짓말로 조합원을 호도하고 있다"며 "재개발을 하더라도 주민들의 추가분담금을 정확히 따져본 뒤 사업성이 있다고 하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8월 단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전체 조합원 566명 중 18%에 달하는 102명이 실태조사 동의서를 제출할 만큼 사업에 '물음표'를 던지는 주민이 상당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미 분양신청을 받고 있는 조합은 조합대로 불만이다. 실태조사로 사업이 멈추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일부 조합원이 분양신청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찾은 조합 사무실엔 현금청산과 분양신청을 고민하는 한 조합원이 장시간의 상담 끝에 선택을 미루고 돌아갔다.
신길9구역 조합 관계자는 "이미 구청에서 선정한 감정평가업체를 통해 조합원들의 추가분담금을 산출하고 있다"며 "실태조사는 이것을 한 번 더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조합원들은 이로 인해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마감인 분양신청은 9일 현재 60% 정도만 접수를 한 상태다.
서울시에 따르면 추진주체가 있는 뉴타운ㆍ재개발 구역 첫 실태조사 대상지 70곳 중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곳은 신길9구역을 포함해 10곳에 이른다. 특히 감정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구역의 경우 실태조사가 소모적일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도 이 같은 구역의 구체적 실태조사 방침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재생지원과 관계자는 "이미 감정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구역의 경우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실태조사로 불협화음이 커지면서 투자자들도 선뜻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신길동 S공인 관계자는 "신길9구역 지분은 3.3㎡당 1,400만~1,500만원 정도에 호가가 형성돼 있지만 찾는 사람이 있어야 거래도 되는 것"이라면서 "조합원들조차 재개발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마당인데 투자자들 움직이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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