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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부국 중동 국가들이 차세대 산업을 키우고 있다. 두바이가 중동의 허브로 성장한 후 인근 다른 국가들도 잇따라 허브 경쟁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카타르와 오만이다. 석유와 사막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중동의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봤다.
인천국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10시간 만에 카타르 수도 도하에 도착했다. 현지시간으로 오전4시40분. 한국과는 6시간의 시차가 있다. 동녘에서는 어슴푸레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중동의 하루가 다시 밝아오고 있다. 도시는 분주하다. 차량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인근에는 수십 층짜리 빌딩들이 우후죽순 솟아있다. 사막의 신기루 같은 도시지만 이웃 두바이와 달리 여전히 중동의 낭만을 가진 곳이다.
우선 피싱하버로 갔다. 선착장에는 전통 목선인 '도우'가 떠 있고 바다 건너 보이는 반대편에는 고층빌딩이 하늘 높이 서 있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곳이다. 카타르는 최근 50년간 눈부시게 성장했다. 바다에서 진주조개 잡이를 하던 인적 드문 해변 마을이 세계 유수의 도시로 도약했다.
카타르가 역사 무대에 등장한 것은 오래됐다. 수천년 전 유적이 해안가에서 발견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페르시아만의 중간쯤에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로 카타르는 일찍부터 유럽과 중동·아시아·아프리카를 잇는 무역의 거점이 됐다. 물론 무역로의 위치가 변하면서 카타르의 지위도 때때로 부침을 겪었다. 동쪽에 있는 바레인에 밀리면서 속국이 되기도 했고 동쪽에 있던 오만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1916년 영국의 보호령이 됐고 1971년 독립했다.
영토 대부분이 사막인 카타르 주민의 최대 수입은 유목과 어업, 특히 진주 잡이가 소득을 보전해줬다. 피싱하버에 있는 진주조개 모형은 카타르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들어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닥쳤다. 1930년대 일본에서 양식 진주가 성공하고 또 세계대공황으로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카타르의 천연진주 산업이 거의 붕괴됐다. 주민 대부분이 카타르를 떠나기도 했다.
카타르를 살린 것은 중동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석유였다. 1932년 처음 서부지방에서 석유가 발견된 후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주춤하다 1950년대 이후 생산이 급격히 늘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천연가스가 추가로 발견되고 생산되면서 국부는 더욱 쌓였다. 1만1,586㎢로 경기도 크기인 카타르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현재 석유 매장량이 세계 13위, 수출량은 18위이고 천연가스 매장량은 3위, 수출량은 2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석유로 먹고살 수는 없는 것. 카타르가 석유 시대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중동의 허브다. 도하 시내 동쪽 바다를 매립한 땅 위에 한창 건설 중인 하마드국제공항을 찾았다. 우선 웅장하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4,850m의 활주로를 갖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기 A380을 제한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공항이라고 한다. 90만㎡의 터미널은 연간 5,000만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12월1일 화물운송이 시작됐으며 내년 초 여객을 포함해 본격적으로 서비스에 들어간다. 본격적인 운용은 2015년부터다.
카타르가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중동의 항공·금융 허브를 노리는 것이다. 이웃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의 성장에 자극 받은 결과다. 아랍 국가의 구성이 모두 비슷하지만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바레인과 카타르, UAE는 특히 더 비슷하다.
1971년 영국의 보호령에서 벗어나 '독립'했을 때 바레인(1개), 카타르(1개), UAE(7개) 등 모두 9개 토후 국가가 모여 연방을 구성하려 시도한 적도 있다. 연방안은 결국 이뤄지지 못하고 바레인과 카타르는 따로 독립했다.
카타르는 관광과 교통, 금융, 마이스(MICE) 산업의 허브화를 통해 두바이에 도전하고 있다. 카타르항공이 단시간에 세계 최정상급 항공사로 성장한 것도 두바이(에미리트항공)와의 경쟁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다만 두바이를 단순히 모방해서는 아류에 머물 수 있다. 카타르가 함께 키우려는 것은 중동 예술문화·교육의 중심, 스포츠의 중심이다. 예술문화의 중심을 위해 박물관·전시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슬람 예술품을 주제로 한 박물관 중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 '카타르예술박물관(Museum of Islamic Arts)'이 대표적이다. 교육을 위해서는 도하 남쪽에 '교육도시(Education City)'를 건설해 중동 전지역에서 학생을 모집·교육함으로써 카타르라는 브랜드를 키우고 있다.
특히 중동의 스포츠 허브를 위해 추구한 정책이 국제스포츠경기대회 유치다. 2006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한 데 이어 오는 2022년 FIFA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있다. 2010년 유치전에서는 한국도 참여했지만 카타르에 밀렸다. 월드컵 개최는 중동 국가 중 처음이다.
경제나 문화와 달리 정치와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불안감이 없지 않다. 현 국왕인 하마드 빈 칼리파 알 싸니가 1995년부터 집권하고 있고 아들인 타밈이 후계자로 있는 사실상 절대군주체제다. '자문위원회(Advisory Council)'라는 조직이 있지만 국민의 대의기구는 아니다. 국가성장을 위한 국민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인구 구성도 문제다. 현재 카타르 내 거주자 수는 176만명. 하지만 이 중 20%만 순수 카타르인일 뿐 나머지 80%는 두바이처럼 이방인이다. 주변 아랍인·인도인·방글라데시인·파키스탄인이 대부분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위해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했지만 카타르인으로 채울 수 없자 외국인을 끌어모은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국력을 모으는 데 문제가 없지 않다.
카타르의 최대 관심사는 석유산업 이후의 먹거리다. 관광과 항공교통·금융·스포츠 등을 키우는 이유다. 특히 카타르인들을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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