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Soweto)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사쿰지 마쿠벨라는 요즘은 늘 웃고 다닌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호텔에 빈 방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하네스버그 서남쪽에 위치한 인구 100만 명의 스웨토는 백인 정권 시절 흑인들을 격리시키기 위해 만들었다. 그는 이 곳에서 태어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를 경험했다. 마쿠벨라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16년 전 반세기를 이어온 아파르트헤이트 종식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던 남아공이 월드컵을 계기로 또 한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아프리카 제1의 경제 대국'이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브릭스'(BRICs)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한 이머징 마켓으로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남아공 정부는 월드컵 개최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경기장 건설, 도로및 숙박시설 확충에 쏟아 부은 돈만 26억 달러에 이른다. 이 같은 SOC 투자를 통한 연관 산업 생산유발 효과만 13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남아공 재무부는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만 13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면서 "월드컵 개최로 2010년 국내총생산(GDP)이 0.5%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아공 관광업계도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크다. 관광객이 최소한 30만명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컨설팅전문업체 '그랜트 손턴'은 "관광객이 평균 18.7일간 체류하며 1인당 3만200랜드(약 4,093달러)씩 총 88억 랜드를 뿌리고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드컵 시청자는 전세계에서 5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남아공 정부는 월드컵 개최를 통해 높아진 국가 인지도를 경제 발전의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적극적인 '남아공 세일즈'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올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는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과 경제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남아공 금융회사들도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남아공 케이프 타운에 위치한 인베스텍 자산운용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20억 달러 규모의 자원개발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 회사의 리차드 가랜드 이사는 "일본의 저금리와 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 추세, 월드컵 열기까지 더해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남아공의 이 같은 움직임과 맞물려 세계 각국의 대(對) 남아공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바람이 거세다. 최근 중-아프리카개발 펀드(CADF)와 지동개발그룹은 향후 2년간 1억3,600만 파운드(약 2억달러)를 투자해 시멘트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중국공상은행은 이에 앞서 지난 2007년 남아공 최대의 은행 스탠더드은행에 37억 파운드(약 55억 달러)를 투자, 지분 20%를 확보했다. 올 4월에는 중국 FAW 자동차가 남아공에 1억 파운드(약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중국은 남아공에서 철광석을 대량 수입함으로써 남아공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프론티어어드바이의 최고 경영자인 마틴 데이비스는 "중국은 남아공을 다른 아프리카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했다. 남아공의 경제력은 주변국가들을 압도한다. 남아공의 국내 총생산(GDP)는 사하라 사막 이남 전체의 37%에 이른다. 지난 1994년 이후 남아공 경제는 연평균 3%대의 성장을 지속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인당 GDP가 5,823달러를 기록했다. 또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등 내실도 탄탄하다. 연 소득이 1만~1만8,000달러의 흑인 중산층은 94년 1,00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난 2007년 93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 수준이다. 남아공 경제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천연자원이다. 전세계 백금의 90%, 망간의 80%, 크롬의 73%, 금의 41%가 남아공에 매장돼 있다. 지난해 광산 부문 총 매출액은 323억 달러에 달하며 광산업 종사자만도 무려 46만 명에 이른다. 기후 또한 온화해 농업도 발달했다. 설탕, 포도, 감귤, 와인 등 농산물 수출은 전체 수출의 8%에 이른다. 금융, 통신 서비스는 이미 선진국 수준이다. 금융부문 총 자산은 4,403억 달러로 전체 GDP보다 많다. 주식시장에 들어온 미국인 투자자금은 41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빨리 회복하는 힘이 됐다. 남아공 경제 규모는 지난해 1.8%위축 됐지만 올해에는 성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남아공의 올해 경제 성장률은 3.3%에 이르고 2011년에는 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남아공 정부가 올해 초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2.3%)보다 높은 것이다. OECD는 "상품가격 상승과 대규모 자본 유입으로 내수 경기가 활성화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남아공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체 인구의 24%가 상수도 시설이 없이 지내고 있으며 20%는 전기도 없이 생활한다. 흑인 집권 이후 교육 예산이 4배 이상 늘었지만 여전히 25%의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있다. 실업률 역시 24%로 주요 이머징 마켓에 비해 월등히 높다. 특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노사분규가 폭발, 앞으로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급한 정부측이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를 대부분 수용, 물가 상승과 정부 재정을 압박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남아공 철도 항만 국영기업인 트랜스넷 노동자들은 17일간의 파업 끝에 11% 임금인상을 받아냈다. 전국 지방 공무원 13만 명이 가입돼 있는 남아공 지자체노조(SAMWU) 역시 열흘 간 파업을 벌여 10% 임금 인상을 관철해 냈다. 이뿐 아니다. 공무원노조와 남아공 노조총연맹이 임금인상과 에너지 가격 인하를 요구하며 파업을 경고한 상태다. 남아공 주요 기업들의 모임인 남아공경제인연합(BUSA)은 운송부문의 파업으로 70억 랜드(약 9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추정했다. 직접적인 피해보다 큰 문제는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이다. 남아공 중앙은행은 "트랜스넷의 임금 인상은 올해 예상 물가상승률의 2배에 이른다"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통 서비스 급속 확산 금융업계등 동반 성장 산업·생활지형도 바꿔 누추한 판잣집과 휴대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남아공에서는 이런 부조화가 일상화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템비사 마을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마자마니 차우케(28)도 휴대폰으로 금융 거래를 이용한다. 아프리카의 이동통신통신 산업이 금융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의 동반 성장을 이끌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에서 유선 전화조차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2000년 이후에는 휴대폰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지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아시아 이동통신시장은 27.4% 성장한 반면 아프리카는 무려 49.3%이나 확대됐다. 시장이 커지자 아프리카ㆍ유럽 업체들도 앞다퉈 뛰어들었다. 영국의 보다폰은 물론 남아공 MTN, 시에라리온의 자인(Zain) 등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HSBC 는 "아프리카 시장에서 경쟁이 격화되면서 업체들이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고속 데이터 통신망과 금융결제 서비스를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업계와 통신서비스업계의 제휴도 활발하다. 보다폰은 2007년 모바일 뱅킹 시스템 '엠 페사(M-Pesa)'를 앞세워 탄자니아에 이어 남아공 금융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모바일 뱅킹 서비스 업체 위짓(Wizzit)은 남아공 은행과의 협력을 조건으로 남아공에 입성했다. 케냐의 사파리컴도 은행 산업으로까지 진출했다. 이미 모바일 계좌를 통해 4만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사파리컴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조셉은 "양말이나 나무 밑에 돈을 넣어두었던 사람들도 은행을 찾고 있다" 며 "은행의 수신 확대는 아프리카 산업발전을 위한 자금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개인을 두는 점은 아프리카 모바일 은행 업무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남아공 스탠더드 은행은 비싼 돈을 지불해가며 지점을 운영하는 대신 슈퍼마켓이나 바(Bar)에 중개인을 두고 고객들의 예대업무를 해결한다. 템비사 마을 스탠더드 은행 경영진 코키 가이카는 "중개인들이 일주일 동안 700에서 800명 정도의 고객을 유치한다"며 "전에는 은행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던 사람들이 계좌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는 아프리카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마이클 조셉 CEO의 말처럼 아프리카 대륙에 휴대전화가 뿌리내리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활과 산업 지형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고 있다. 휴대전화를 통해 그들은 금융이라는 신세계에 눈을 떴다. 덩달아 국내 총 생산량도 늘리며 아프리카는'성장과 발전'이라는 꽃을 피우는 중이다. 한동훈 기자 hooni@s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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