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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금리를 정책당국이 결정하고 운용하던 시절에는 은행에 대한 신뢰가 그런대로 높았다. 금리를 갖고 협잡ㆍ담합하는 은행도 없었고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기관 건전성을 정부가 책임졌다. 금융비리나 금융시장의 불안정도 심하지 않았다.
금리가 자유화되고 금융규제가 크게 완화된 오늘날 국내외를 막론하고 금융시장은 더 불안정해졌다. 은행들이 공공성보다 상업성에 치우치면서 금융비리와 무분별한 금리조작 등으로 신뢰는 추락했다. 영국의 바클레이즈은행이 리보(LIBORㆍ런던에서 우량은행끼리 단기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금리)를 조작한 게 대표적 사례다. 리보는 전세계 금융상품의 30% 정도에 적용되는 기준금리다.
우리나라에서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하고 있다. 300조원이 넘는 가계ㆍ기업대출 이자율 산정기준이 되는 CD 금리는 한국은행 기준금리 등이 하락해도 거의 변동이 없어 차입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높은 대출이자를 지불하는 원인이 됐다. 차입자들은 이번 사례가 금융사들의 부도덕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은행들은 CD 발행량이 감소해 거래가 부진한 데 따른 문제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금융사들은 거의 거래가 없어서 시장금리 변동을 반영하지 못하는 CD 금리를 이용해 고금리 혜택을 누려왔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금융사들의 무분별한 금리조작은 묵과할 수 없는 협잡이다. 정부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하고 금융사들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감사원은 은행들의 부당한 대출 가산금리를 조사했다. 은행들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가산금리를 고무줄처럼 멋대로 적용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가산금리를 올려 수익을 높이는 은행 때문에 서민들의 대출금리는 요지부동이거나 천천히 찔끔 내릴 뿐이다. 차주의 상환능력을 따져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고객의 편의에 부응하는 대출상품과는 거리가 멀다.
금융시장의 불공정 및 비리가 드러나자 정책당국은 대출 가산금리를 결정할 때 나이ㆍ학력 등에 따른 차별조치를 하지 말라거나 서민에게 우대금리를 적용하라고 요구하는 등 금리 결정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강조되면서 이 같은 간섭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과거 정책당국이 은행금리를 결정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싶다. 금융시장이 불완전하고 무질서한 게 정부규제의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리보 조작 사건과 같은 엄청난 금융사건이 발생했지만 정부는 관치금융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금리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며 정부 역할은 금융감독에 그칠 뿐 직접적인 간섭이 돼서는 안 되며 정부가 금융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시장실패 못잖은 정부실패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철저하고 투명한 금융감독 제도가 금융산업 국제경쟁력 향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CD 금리 담합 의혹과 관련한 공정위원회의 조사, 은행들의 부당한 대출 가산금리에 대한 감사원의 지적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가산금리에 대한 정책당국의 직접적 개입은 금리 자유화라는 금융정책의 기본방향을 훼손한다. 가산금리도 일종의 가격인 만큼 정부가 깊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금리 수준은 은행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더라도 금리결정 절차는 합리성ㆍ투명성을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리결정뿐 아니라 금융 전반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키고 금융시장과 금융산업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 수도 있다. 금융사들의 무분별한 금융비리가 정부규제를 불러들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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