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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방카슈랑스 '불공정한 게임'
입력2004-09-05 15:45:13
수정
2004.09.05 15:45:13
전주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김종국
무릇 정책의 도입은 효율과 편익에 우선한다. 방카슈랑스는 소비자의 편익을 증대하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도입됐다. 시기상조라는 보험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논리로 정책당국에 의해 무리하게 추진됐다. 그러나 시행 1년을 뒤돌아보면 편리함보다는 불편익이 휠씬 증대됐음이 입증되고 있다. 은행의 부조리였던 꺾기가 대출자에게 보험가입으로 바꿔치기되고 있다. 자금이 부족해서 대출을 받는 고객에게 보험가입을 강요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가입했다는 대출자의 투덜거림이 신문지면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또한 보험료가 인하돼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인하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보험사는 설계사에 지급하는 1.45%보다 높은 1.82~2.18%의 수수료를 은행에 지급하고 있다. 혼신의 노력으로 모집하는 경제적 약자인 설계사보다 우월적 지위를 가진 은행에 더 많은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는 셈이다. 강자약 약자강의 악순환이 재현되고 있다. 더더구나 은행의 저축예금금리는 지속적으로 인하하면서도 보험상품에는 고금리를 강요해 금리위험(risk)을 보험회사에 전가하고 있다. 특히 은행의 보험자회사가 고금리를 주도하고 있어 경쟁 보험사와 일시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보험자회사의 부실화를 초래해 은행 부실화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멍들게 했던 카드사 부실사태에는 은행의 카드자회사도 일정 축을 담당했었다. 더욱이 일부 보험사들은 은행에 대한 제휴 의존도가 60%에 달해 은행이 일방적으로 제휴를 중단할 경우 독자생존이 불가능해지는 허약한 체질로 전락했다. 보험사들은 생존의 몸부림으로 고금리를 수용하고 교육 등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즉 은행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비용이나 금리 리스크를 보험사에 전가시키는 불공정행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방카슈랑스 1차년도 도입에 따른 역효과가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내년 4월에는 보장성보험 등 보험사의 주력상품까지도 은행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 이러한 상품들은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하지만 수수료가 높아 은행권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특히 우리나라 생보사들은 저금리에 의한 역마진으로 이차손을 극복하는 데 숨가쁜 지경이다. 손익구조가 아주 불안한 상황에서 3%대까지 떨어진 저금리가 지속된다면 생보사들의 재도산이 우려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 4월로 예정된 방카슈랑스 확대개방은 전보험사의 경영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보험산업의 붕괴로 약 10조~2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연구결과가 전해지고 있다.
저금리에 시달리면서 방카슈랑스 도입 1년 동안 저축 연금보험의 60% 이상을 은행에 내준 경험이 있는 보험사들은 2차년도 도입에 대해 아예 생각하기도 싫은 기색들이다.
은행의 우월적ㆍ독점적 지위로 금융산업간 불균형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산업의 위축에 따른 사회보장체계의 약화로 소비자 후생도 악화되며 복지국가의 건설이라는 정부정책에 반하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특히 30만명의 설계사 대리점조직이 15만명 정도로 감소될 수밖에 없어 고용증대라는 참여정부의 정책기조와 엇박자를 가져오게 하는 결과가 예견된다.
경제정책의 목표는 경제성장과 안정, 고용증대에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30만에 가까운 보험설계사와 보험회사 내근직원의 대량실직이 발생하고 중소 보험회사의 연쇄도산으로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등 경제대란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방카슈랑스의 추가도입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까운 일본은 방카슈랑스 추가개방을 오는 2007년 이후에 논의하기로 하고 연기를 결정했다. 미국ㆍ영국ㆍ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방카슈랑스 도입을 금융산업의 발전단계에 따라 16~20년에 걸쳐 서서히 시행해 연착륙에 성공한 사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협ㆍ농협ㆍ체신보험ㆍ방카슈랑스 등 모든 보험상품 판매에 대한 감독과 정책을 금융감독원 보험국에서 관리해야 마땅하나 부처간 이기주의와 조직 내의 의견차이로 통합관리되지 못해 보험산업의 총체적 부실화가 우려된다. 이는 선진복지국가의 핵심요소인 사회보장제도의 확립이라는 정책기조에 역행하는 반사회적 요소라는 현실로 인식해야 한다.
은행의 보험사 소유는 허용되고 있으나 보험의 은행자회사 소유는 불허되고 있다. 공정한 게임의 룰이 아니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예속화에 대한 우려보다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장악에서 오는 폐해를 면밀히 분석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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