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책시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해마다 독서인구와 독서량이 줄어드는 반면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선호도와 비중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터에 세계 전자책시장의 절대 강자 '아마존'의 한국 진출은 이렇다 할 플레이어가 없는 국내 시장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이라는 게 한결같은 전망이다. 국내 굴지 출판사인 민음사의 박근섭 대표는 "막강한 콘텐츠와 보기 편한 단말기로 무장한 아마존은 일본의 예에서 보듯 한국 전자책시장을 빠른 시일 내에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마존의 공습에 대비해 정부가 전자책시장에 적합한 장르문학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집중 지원에 나서고 업계는 전자책 업체 간 콘텐츠 호환이 가능한 단말기 표준 제정에 나서는 등 체계적인 대응이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장르문학·학술 등에 집중 지원해야=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04년부터 전자책 지원에 매년 10억여원의 예산을 집행해왔고 올해도 14억원 규모를 배정했다. 이는 출판 부문 예산의 고작 5% 수준으로 다시 제작에 지원되는 것은 4억원 정도다. 지원금 확대와 함께 전자책시장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로맨스·미스터리·판타지 등 장르문학을 육성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원은 "해외에서도 장시간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인문교양이나 순문학 등은 전자책으로 잘 팔리지 않는다"며 "짧고 재미있지만 종이책으로 사긴 아까운 로맨스·미스터리 등 장르문학, 필요한 부분만 뽑아 쓰려는 수요가 많은 학술 콘텐츠가 전자책에 적합하다"고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POD(Print on demand)의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음원시장에서의 '디지털 싱글'처럼 짧은 단위의 전자책 판매다. 현재는 주로 학술·교육 부문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묶어 판매하는 형태이지만 다른 분야로의 확대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업계 힘 합쳐야 '공룡' 아마존에 대항 가능=단적으로 전자책 콘텐츠 규모만 따져도 4대1, 5대1의 싸움이다. 통상 100만~130만으로 추정되는 아마존에 비하면 국내 최대라는 교보문고도 25만여종 수준이다. 예스24나 인터파크도 15만종 언저리. 개별적인 경쟁이 힘들 수밖에 없다. 국내 출판 업계의 '연합전선'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국내에서는 서로 다른 플랫폼으로 구매한 전자책 콘텐츠가 호환되지 않는다. 예컨대 교보문고에서 구매한 전자책을 예스24 단말기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콘텐츠 간 호환될 수 있는 일종의 '표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 정부가 10억여원을 들여 개발한 표준 DRM은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교보문고나 예스24 같은 유통사업자 입장에서는 이미 확보한 고객을 공유하는 셈이 돼 기피하기 때문. 업계 차원의 대승적 합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출판사와 작가, 다양한 판매채널 개척을='글로벌 빅5' 출판사인 아셰트·맥밀런·펭귄랜덤하우스·하퍼콜린스·사이먼앤슈스터 등이 자체 사이트를 통한 전자책 판매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소 출판사들과 대거 협약을 맺고 전자책 판매를 대행하며 동시에 자체 플랫폼 규모까지 키우는 '윈윈 모델'을 내놓았다. 또 신인작가의 작품은 전자책으로 먼저 출시해 가능성을 확인하는 추세도 자리잡고 있다.
유영호 교보문고 콘텐츠사업팀 차장은 "해외 메이저 출판사조차 종이책 매출이 줄고 있지만 전자책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수익이 늘고 있다"며 "특히 독자가 책을 만나는 새로운 마케팅 도구로의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가 직접 전자책 유통에 나서는 것은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조앤 롤링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2011년 웹사이트 '포터모어(http://www.pottermore.com)'에서만 살 수 있는 '해리포터 시리즈' 전자책이 이미 종이책 매출을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아마존 국내 진출은 위기이자 기회=진출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터넷서점·전자책 시장 1위를 차지하는 아마존의 국내 진출은 곧 출판계의 위기일 수 있다. 백 연구원은 "아마 1년 정도면 아마존이 국내에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존'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이 그간 전자책에 소극적이던 출판사와 작가를 대거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서점 업계가 레드오션인 상황에서 아마존의 노림수는 전자책 시장으로 기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많은 전문가는 아마존의 독점화를 우려하면서도 시장이 넓어지는 긍정적 효과 역시 기대한다. 현지 새로운 작가와 콘텐츠를 발굴·공급하는 아마존을 통해 그간 소극적이던 작가와 출판사가 눈을 뜰 것이라는 예상이다. 곧 작가와 콘텐츠 확보가 관건이 된다는 얘기고 이는 반드시 국내 출판업계가 불리한 게임이 아닐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