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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윤석금은 왜 태양광에 투자했나


윤석금 회장은 초췌했다. 1980년대 이후 꽉 짜인 재벌 체제를 뚫고 맨주먹으로 30대 그룹을 키운 남자는 더 이상 '샐러리맨 신화'로 보이지 않았다. 지난 5일 TV 화면을 통해 본 고개 숙인 윤 회장의 모습은 그랬다.

윤 회장의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불과 50여미터 떨어진 극동빌딩 현장에서 전해오는 취재기자의 음성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배어 있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윤 회장, 아니 기업가의 삶을 생각해봤다. 성공하고 승승장구하면 신화이고 실패하고 몰락하면 죄인이 되는 그 불꽃 같은, 마치 외줄 타는 듯한 인생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기업가를 알면서도 모른다. 필자 역시 수많은 기업가와 만나왔지만 잘 알지 못한다. 기업가가 되지 않는 이상 그들 내면의 깊은 고민과 애환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얼마 전 기업가 형제를 만났다. 올해로 38년째인 기업은 창업주이자 부친인 회장이 산업화 시대 젊음을 바쳐 일군 회사다. 형인 A대표에게 "회장님은 복 받으신 거 아니에요? 요즘 2세들은 대부분 가업을 물려받기 싫어하잖아요"라고 물었다. "회사 경영을 맡을 때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기업,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볼만 해…. 단 망하지 않는다면'(웃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A대표는 말을 이었다. "기업가들이 망할까봐 가장 힘들어 하는 게 뭔지 아세요? 투자예요. 경쟁에서 뒤처져 회사 문 닫지 않으려면 매년 투자를 해야 해요. 근데 투자 잘못하면 망하는 거예요."

기업가의 가장 큰 고뇌는 투자

며칠 전 매출 1,000억원대 중소기업의 B대표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 얘기를 전했다. B대표는 빙그레 웃었다. "맞아요. 망하지만 않는다면…."

그는 "원부자재를 사야 하는데 자본금 10억원 갖고 모자라서 10억원을 은행에서 빌렸고 지인들에게 갚아준다고 약속하고 10억원을 더 마련했다"고 창업 초기를 회상했다. B대표는 그때 개인보증을 섰다. 만약 실패했다면 그는 유능한 회계사로 일하면서 모아놓은 알토란 같은 재산을 거의 다 날렸을 것이다.

기업가는 자칫 발을 헛디뎌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고 악천후와 산사태를 만나 목숨을 잃기도 하는 등반가와 같다. AㆍB대표는 물론 돈 많은 기업가들이 왜 위험천만한 길을 계속 가는지 항상 의문이 든다. 어느 정도 돈 벌면 상당수 2ㆍ3세들처럼 기업 팔아 임대료 나오는 빌딩 사고 재테크하며 '안전하게' 살아도 될 텐데 말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윤 회장은 이미 1990년대 탁월한 사업 수완으로 막대한 재산을 쌓았다. 조용히 은둔해 그 돈 펑펑 쓰면서 호의호식하며 온갖 호사를 누려도 그만인 처지였다.

윤 회장이 왜 61세인 2006년 태양광 사업에 도전했을까. 이듬해 극동건설 인수가 웅진그룹에 치명타가 됐지만 앞서 태양광 사업을 벌이지 않았다면 타격을 덜 받았을 것이다.

필자는 윤 회장을 만나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아마도 그는 타고난 기업가가 아닌가 사료된다.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류 기업을 일궈 더 큰 부를 만들어내고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윤 회장은 웅진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정면돌파하는 대신 웅진코웨이 매각을 지연시키고 급기야 채권단을 배제한 채 전격 법정관리 신청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2006년 던진 태양광 출사표를 놓고 뭐라 하는 건 동의하기 힘들다. 윤 회장처럼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열혈 기업가들이 도전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산업 강국 한국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전정신 죽으면 미래 없어

선진 공업국들은 기업가정신을 높이 사고 성공한 기업가를 존경하며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실패한 기업가에게 언제든 재기의 기회를 주고 있다. 망할 수 있지만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수를 던져 사업을 일으키는 기업가정신을 숭상하는 공동체만이 더 많은 부를 창출하고 또 나눌 수 있어서다.

작금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고 투자를 가로막는지도 모른 채 '기업 때리기'식 경제민주화만 줄곧 외쳐대는 박근혜ㆍ문재인ㆍ안철수 세 대선주자와 정치권ㆍ시민단체들에 기업과 기업가가 무엇인지 차분하게 따져보기를 권하고 싶다. 기업가정신이 죽으면 투자도, 일자리도, 수출도, 성장도, 분배도, 대한민국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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