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대선 승리를 위한 자신의 첫번째 과제로 경제민주화를 천명했다. 시장이 효율만 따지다가 공공성을 잃었다며 정부와 대기업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 박 후보의 기업정책은 강력한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
◇"시장의 원칙에다 공공성 담아야"=박 후보의 기업관은 지난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연설한'원칙이 바로선 자본주의'에 틀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연설에서 글로벌 경제위기를 헤쳐가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원칙에 공공성을 우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은 주주의 이익이나 수익률뿐만 아니라 종업원, 지역사회 등 공동체 이익을 목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 공동선이 같아야 진정한 성장이고 지속 가능한 이윤을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시장경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감독을 확대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첨단기법으로 사행성이 부각되는 금융 분야에 다양한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소ㆍ벤처기업과 영세상공인 등 경제적 약자에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흐르도록 놔두라는 성장우선주의의 '낙수효과'에 부정적인 시각이다.
◇대기업 체제 전반적인 개편 예고=이 같은 기업관에 기초해 나온 박 후보의 정책은 그가 사실상 진두지휘한 4월 총선 공약에 들어 있다. 그 밖에 그가 출마선언 당시 밝힌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책은 새누리당 내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기업정책 중 일부도 수렴하고 있다.
대기업정책은 일단 경제력 집중완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다만 크고 거친 규제보다는 작아도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박 후보의 생각이다. 대기업정책 가운데 유난히 공정거래법 개정이 많은 이유다.
그는 총선에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하청업체에 부당하게 단가를 인하할 경우 10배로 손해배상하고 중소기업이 시장점유율을 3분의2 이상 차지하는 분야에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재벌 총수 일가가 가진 지분 이상으로 경영에 개입하는 '거품'을 해소하기 위한 규제도 강화했다. 출마선언 당시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해 더 이상의 거품 만들기를 제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총수 일가가 지닌 계열사가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리고 이를 통해 편법적으로 상속하는 일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정기적으로 직권조사를 실시하게 했다.
◇실행 방안 등에는 충분한 논의 필요=현 박 후보의 기업정책은 큰 틀에서 야권과 다를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2008년까지 기업활동의 자유를 강조하던 그가 돌연 입장을 선회하면서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는 노무현 정부 내내 기업의 자율을 강조했다. 대중소 상생 역시 대기업 규제보다는 중소기업 지원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이때 법인세는 물론 소득세와 세무조사를 한시적으로 면제시켜주겠다고 공약했고 금산분리 역시 폐지를 주장했다. 모두 현재 새누리당의 정책 방향과 정반대에 가깝다. 그는 "나쁜 정책보다 더 나쁜 것은 일관성 없는 정책, 예측할 수 없는 정책(2004년 7월)"이라면서 경제정책에 예측 가능성을 강조해왔다.
기업 측에서는 박 후보 주변의 여권 인사 사이에서 기업정책을 놓고 온도 차가 벌어지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는 불만을 늘어놓는다.
박 후보는 기업의 정당한 경제활동은 지원하되 불공정한 행태는 규제한다는 원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양쪽의 좋은 점만 취하려다 보니 원칙과 방향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게 기업들의 지적이다.
구체적인 경제민주화 정책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대해 친박근혜계의 한 경제통 의원은 "순환출자는 어떤 면에서는 기업의 효율적인 투자 방법이기 때문에 무조건 막기보다는 문제가 나타났을 때 강력하게 과징금을 매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면서 "기존 출자는 가능하고 신규만 불허하면 일관성이 없을뿐더러 특정 기업을 편든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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