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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의 채점 결과 '쉬운 시험'이 예고된 영어 영역에서 만점자가 속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실수로 한 문제라도 틀릴 경우 1등급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변별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셈이지만 이 같은 영어 출제 경향은 올 수능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논란이 예상된다.
2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공개한 6월 수능 모의평가 채점결과에 따르면 영어 영역에서 표준점수 최고점인 126점을 받은 만점자는 전체 응시인원의 5.37%인 3만1,007명에 달했다.
A·B형으로 나눠 치러진 국어와 수학 영역의 만점자 수가 각각 7,033명, 8,716명에 불과한 것에 비해 영어 영역의 만점자만 유독 많았다.
영어 영역의 만점자 수는 지금까지 치러진 모든 모의평가와 수능시험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물수능' 논란이 일었던 지난 2012학년도 수능의 영어 만점자 비율(2.67%)과 비교해도 배 이상 많았다. 특히 만점을 뜻하는 표준점수 최고점과 1등급 커트라인(1등급 구분점수)이 일치해 만점을 얻어야 1등급을 받을 수 있고 한 문제라도 틀릴 경우 2등급으로 떨어지게 됐다.
이처럼 영어 영역에서 만점자가 급증한 것은 '쉬운 대입 영어'라는 교육부 방침에 따라 영어 시험이 쉽게 출제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까지 문ㆍ이과에 따라 A·B형으로 나눠 치러졌던 영어 영역은 올해부터 통합형으로 전환했다. 앞서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잇달아 수능 영어 영역의 절대평가 도입 가능성을 포럼을 통해 알리는 등 정책 변화 가능성도 예고되고 있다. 절대평가란 학생 수 기준 백분율로 성적을 정하는 현행 상대평가 방식 대신 일정 점수 이상이면 모두에게 같은 등급을 주는 '수우미양가' 형태의 채점 방식으로 그만큼 좋은 성적을 얻기가 쉬워진다.
실제 이번 모의평가에서 나타난 영어 표준점수의 최고점(만점)은 지난해 수능의 쉬운 A형(133점)은 물론 표준점수 도입 이래 최하위를 나타냈다. 표준점수는 수험생 전체 평균 대비 상대적 위치를 알려주는 점수로 시험이 쉬워 평균이 높으면 최고점이 낮아지고 어려우면 최고점이 올라간다. 당초 교육부는 올해 수능시험을 지난해 A형보다는 어렵고 B형보다는 쉽게 내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난이도는 쉬운 A형보다 더 낮았다. 평가원 관계자는 "영어를 쉽게 출제한다는 정부 발표에 부응한 것으로 현재로서는 이 같은 출제 기조를 유지할 계획"이라며 "학생의 학습부담이 줄어들어 사교육 경감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어 B형을 제외한 국어 A형과 수학 AㆍB형 영역 등 기타 주요 과목도 지난해 수능보다 쉽게 출제된 것으로 파악됐다. 수학 A형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36점, B형은 132점으로 지난해 수능의 A형(143점), B형(138점)보다 각각 7점, 6점 낮았다. 국어 A형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28점으로 지난해 수능보다 4점 낮았고 B형은 133점으로 2점 높았다. 표준점수 최고점으로 추정한 만점자 비율은 국어의 경우 A형과 B형이 각각 1.99%, 0.54%였고 수학은 A형 1.37%, B형 1.88%였다. 평가원은 "영어가 쉽게 출제되면 국어와 수학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지난해 수준으로 출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일선 학교에서는 영어 과목의 변별력이 떨어질 경우 국어·수학 등이 기타 과목이 당락을 좌우하며 결국 영어 과목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고3 교실에서는 상위권 학생을 중심으로 한 문제라도 틀릴 경우 지망 대학이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특정 교과의 시험이 쉬워질 경우 사교육이 완화되기보다는 사교육 집중 과목만 바뀌는 데 그칠 수 있다"며 "계속 시험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면 비교과 항목의 영향력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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